[정책에세이] 자살 보도, '극단 선택' 표현이 문제일까

입력 2024-04-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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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가 다음 달부터 제목에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자살 사건 보도에 시정을 권고한다. ‘극단적 선택’이란 말이 자살이 ‘능동적 선택’이라는 오인을 유발하고, 유사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모방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살을 온전한 ‘개인의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반영했다. 언중위는 대신 ‘사망’, ‘숨지다’ 등 가치 중립적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사실 언중위의 권고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문제는 권고가 얼마나 효과를 볼 것이냐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처음 마련되고 20년이 지났지만, 자살 사건에 대한 자극적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왜?’라는 의문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정 표현에 대한 수정을 권고할 것이 아니라, 보도 행태가 변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2004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마련했다. 일부 언론인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긴 했으나,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주도한 사실상 ‘관제지침’이다.

언론이 배제된 이 권고기준은 수용성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권고들로 구성됐다. ‘자살 보도를 무조건 자제해야 한다’, ‘눈에 띄는 지면에 배치를 자제해야 한다’ 등 보도 방식을 통제하는 조항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보도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다수 사람의 희생을 감수할 정도의 보도 가치가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자살 보도에 앞서 사회의 중요한 현상이나 문제를 보여주는 손쉽고 주목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등 언론에 적대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언론계가 사실상 배제되고, 보도의 내용을 넘어 보도 여부까지 통제하는 이런 권고가 현장에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그나마 보도에 반영된 조항은 ‘자살 표현 자제’다. 그런데 제목에서 ‘자살’이란 표현만 빼자는 근시안적인 접근은 ‘극단적 선택’이란 대체 표현을 만들어냈다. 이번 언중위의 권고도 그 출발점은 정부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이다.

이후 정부는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제정했다. 보도를 통제하거나 언론에 적대적인 조항이 대거 삭제됐다. 또한, ‘자살 표현 자제’는 ‘극단적 선택을 포함해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 자제’로 구체화했다. 다만,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부족한 홍보 등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에 가려져 ‘극단 선택’ 등 표현이 계속해서 사용됐다. 보도량도 줄지 않았다. 사건의 중대성, 보도 가치와 무관하게 ‘자살을 예방해야 하니 자살 사건을 되도록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4.0’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권고기준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두 가치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먼저 자살 보도를 분류해야 한다. 자살 보도는 사회문제로서 자살을 다루는 보도, 사건으로서 자살을 다루는 보도로 나뉜다. 사회문제로서 자살을 다루는 보도는 문제 분석, 대안 제시를 포함하는 종합적 보도로서 적극적인 권장이 필요하다. 반면, 사건으로서 자살을 다루는 보도는 제목, 내용이 어떻든 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절대적인 보도량을 줄여야 한다.

둘째,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권고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수용성을 높이려면 당사자인 언론이 권고기준 제정의 주체가 돼야 한다. 정부와 전문가가 주도하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권고기준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를 차치해도 관제지침은 자칫 ‘언론 통제’로 비쳐 뜻하지 않은 역효과를 낼 우려가 있다. 또한, 권고 내용이 설득력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가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자살 보도 자체를 지양하란 식의 권고는 추상적이며 비현실적이다.

개인적으로는 2022년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이 함께한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 제정위원회에 간사위원으로 참여해 초안과 최종안을 작성했다. 당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수용성을 높일 것인가’였다. 이에 대부분 조항에서 제목이나 내용에 관여하거나 보도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상식적이지만 간과되기 쉬운 원칙들을 제시했다. 보도 권고기준은 선언이 아니다. 현실에 적용돼야 의미가 있다. 미흡하다면 점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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