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기본법은 국회 계류...“규제와 진흥 조화 이뤄야”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법을 시행하면 AI 기술을 탑재한 다수 한국 기업이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국내에도 AI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가 산·학·연 전문가들을 모아 법제화 기반 작업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AI전략최고위협의회 법·제도 분과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일 국가 차원의 AI 혁신 방향을 이끌 최고 거버넌스인 AI전략최고위협의회를 출범했으며 이날 법제도 분과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가동했다.
이날은 EU AI법안의 주요내용 및 시사점을 알아본 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AI법안의 발전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EU의 AI법은 기본법 성격을 가진 포괄적 규제로 현재 입법 절차가 거의 마무리 돼 내달 중 EU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이사회 최종 승인을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오병철 연세대 교수는 “EU AI법의 특징은 기존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범용 AI‘에 대한 규제도 추가됐다는 점과 AI가 가지고 있는 위험을 크게 4단계로 나눴다는 점”이라면서 “특히 EU AI법은 위반 시 제재와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EU 시장에 AI 시스템 또는 모델을 공급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관련 의무 준수에 대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U의 AI법은 고위험 등급을 포함해 AI 활용 위험도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눠 차등 규제한다. 일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실시간 원격 생체정보 인식 △안면 인식 데이터베이스 구축 △감정추론 △의사결정 왜곡 등 EU 전역에서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AI 유형 8가지도 명시하고 있다. 시행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금지 대상 AI 관련 규정은 발효 이후 6개월, 범용 AI 규제 적용은 12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우선 시행되고 2026년 5월께 대부분 규정이 전면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EU의 AI법 조항이 아직은 모호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위반 시에는 최대 전 세계 매출액의 7%가 과징금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해당 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혜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면 시행까지 2년이 남아 약간의 준비시간을 허용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아니다”면서 “많은 관심을 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국회 계류 중인 AI기본법안과 국내 AI 법제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규제와 진흥책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합토론에 참석한 이영탁 SK텔레콤 부사장은 “앞으로 어떤 서비스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전에 촘촘한 경성규제를 설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면서 “EU AI법은 AI 공급국이 아닌 소비국 입장에서 만들어진 다소 경직된 법이다. 헐렁한 옷을 일단 만들고 차츰 우리 몸에 맞게 맞춰가는 것처럼 진화하는 AI에 맞게 규제를 마련해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제도 분과위원장인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EU AI법, 미국 행정명령, AI기본법 가이드라인 등 국내외 AI 법제 관련 논의를 구체화하고 연구반을 수시 운영하며 논의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