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격 인하 압박에…보여주기식 불과”
시민단체ㆍ전문가 “소비자 눈치보기 행태”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에 식품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다만 요인이 뚜렷하지 않은 데도 인상에 나섰다 이를 취소하거나 비인기 품목만 가격을 동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풀무원·롯데웰푸드는 최근 가격 인상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특히 오뚜기는 지난달 27일 오전, 12월 1일부터 분말 카레와 케첩 등 24종 품목 편의점 판매 가격을 올린다고 알렸는데 반나절 만에 가격 인상 결정을 번복했다.
오뚜기는 가격 인상 요인에 대해 케첩 원료인 토마토 페이스트 등 원재료와 물류비 상승을 꼽았다.
하지만 또 다른 원재료인 밀, 팜유 등 원재료 가격은 오히려 내렸기 때문에 인상분을 상쇄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뚜기는 올해 1~3분기 원재료ㆍ상품 매입액이 1조4984억 원으로 전년 동기 1조9887억 원보다 24.7% 줄었다. 3분기만 놓고 봐도 원재료ㆍ상품 매입액은 5296억 원으로 전년 7145억 원보다 25.9% 감소했다.
그런데 오뚜기의 원재료값 구매액은 줄어든 반면 실적은 역대급이다. 오뚜기의 3분기 연결 재무제표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각각 9087억 원, 83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도 9.13%로 전년 동기 5.38%보다 개선됐다.
결국 실적이 이처럼 고공행진 중이기 때문에 다가올 원가 부담을 고려하더라도 가격 인상에 대한 유인이 애초에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풀무원과 롯데웰푸드의 경우 각각 유제품인 '요거톡' 3종과 햄 제품 '빅팜'의 편의점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는데, 모두 주력 제품이 아니란 점에서 '보여주기' 논란이 나온다.
풀무원 유제품 전문 기업 풀무원다논이 판매하는 요거톡의 경우 최근 토핑 유제품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성장 중이지만 '액티비아'와 비교하면 주력 제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롯데웰푸드 빅팜 또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소시지 품목 중에서는 점유율이 미미하다. 롯데웰푸드 입장에선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큰 부담이 없는 제품인 셈이다. 편의점 업계 한 관계자는 "비슷한 품목으로는 맥스봉, 천하장사 등이 있는데 빅팜은 이 제품들과 비교해 취급하는 점포가 적고 점유율도 크진 않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들은 기업들의 이 같은 비인기 품목 가격 동결이나 인하가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최근 성명서를 내고 “기업들의 이런 눈속임은 시장에 대한 불신과 기업에 대한 경계심으로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 눈치도 보이겠지만 작년부터 식품기업들이 가격을 여러 번에 걸쳐 큰 폭으로 올렸기 때문에 또 인상하는 것에 대해 이제 소비자 눈치가 보이는 것”이라며 “가격에 손을 대지 못하니 슈링크플레이션(물건의 양이나 품질을 낮춰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것) 같은 현상까지 성행하는 등 소비자 기만 행위가 극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