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어느 소설가의 부음

입력 2023-08-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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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아침의 일이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나이 들어 새벽잠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이날은 매미 소리가 유난히 컸다. 일어나 보니 창문을 열어둔 채였고, 창문 바깥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날아와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70~80데시벨 정도로 알람시계와 도로변 자동차 소리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짜증이 나기보다 다른 소리도 아닌 매미 소리에 잠이 깨었다는 게 오히려 기분을 좋게 했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울면 소음과 다를 바 없기도 하지만, 자동차 소리와는 다른 자연의 소리라 시끄러움 속에서도 청량감이 느껴진다. 아침을 먹으면서 매미에 대해 얘기했다. 아내가 전하는 파브르의 곤충기에 따르면 매미가 우는 것은 단지 짝짓기 짝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삶의 의미와 환희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해석도 매미소리처럼 청량하게 들리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들어와 노트북 화면을 열 때 옆에 둔 전화기에 알림 신호가 떴다. 한국작가회의에서 단체로 알리는 부고였다. 강기희 소설가 별세. 빈소 정선군립병원 장례식장. 발인 8월 3일.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은 지난겨울에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부고를 받게 될지 몰랐다. 나이도 아직 60을 채우지 못한 59세. 뭐가 급해 이렇게 서둘러 떠나는지. 나하고는 같은 강원도 출신의 소설가이고, 대학도 같은 대학의 경영대를 나왔다. 약간의 나이 차이가 있어서 내가 졸업할 무렵 입학해서 학교에서는 서로 인사하지 못했다. 저마다 성실하게 살다가 내가 먼저 소설가가 되어 이런저런 신문 신춘문예 심사와 신인작가를 뽑는 문학 공모에서 몇 번 심사자와 응모자로 만나면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특히 기억나는 작품은 아직 책으로는 묶이지 않은 채로 읽었던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였다. 동강은 강원도 정선과 영월을 상징하는 한강 상류의 강이고, 쉬리는 또 그런 동강을 상징하는 고기였다. 그 무렵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든 동감댐을 건설하려 들었고, 이 땅의 많은 시민단체가 동강을 살리기 위해 댐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무렵 신인작가 강기희를 만났다. 젊은 작가인데도 무수한 싸움판에서 어깨가 굵은 사람 같았다. 첫인상부터 분명하고 대찬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런 태도 때문에 실제보다 비호감을 줄 때도 있었지만, 천성이 또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분명하되 세련미 같은 것은 조금도 없는, 고향 정선을 사랑하고, 정선의 자연을 사랑하고, 정선의 아라리문화를 자신의 정신처럼 사랑하는 작가였다.

그가 벌인 일 중에 내 기억에 가장 충격처럼, 또 신선하게 남는 일은 일제강점기에 매우 적극적인 친일파였던 고향의 한 인물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애국지사로 윤색되어 가던 때에 그의 그런 가짜 공덕비 옆에 ‘단죄비’를 세운 것이었다. 읍내 서점들도 망해가는 시기에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오지에 숲속책방을 연 사람이었다. 이 모두 강기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삶을 희화화하듯 ‘이번 청춘은 망했다’는 제목의 소설집을 냈지만, 그가 있어서 거칠게 바로 잡은 것도 참 많았다. 정말 정선을 사랑하고, 고향의 문화와 고향의 산천을 사랑한 작가였다. 원주에 사는 김도연 작가와 연락하여 당일 왕복 10시간의 조문을 다녀왔다. 앞으로도 어느 여름날 아침, 방충망에 매미가 날아와서 울면 그가 온 듯 그의 얼굴과 행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부디 영면하시라, 나의 밉고도 거친 고향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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