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소기업청이 기술혁신 기업에 선정할 정도로 우수 기업으로 알려진 한 중소기업에서 최근 직원들이 줄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회사는 본사에만 30명이 근무했으나 10여 명이 퇴사하고 현재 18명만 남았다고 한다. 평균 연봉 4700만 원에 복지도 잘 돼 있다는 회사에서 직원들은 왜 떠났을까.
한 공중파 보도에 따르면 A사 대표 B 씨의 폭언과 욕설 등 갑질이 집단 퇴사를 불러왔다. 녹취록에 따르면 B 씨는 영업 회의 중 직원들에게 “이 XXX들”, “XX놈아 맨날 핑계만 대고 XXX야”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것은 물론 해고한다는 협박성 발언을 일삼았다. B 씨의 욕설은 장소와 성별도 가리지 않았다. B 씨는 임신부가 있는 사무실에서도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 여직원은 입사 3개월 만에 공황장애가 생겼다.
B 씨의 갑질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으나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였다. 함께 신고했다는 이유로 더 심한 괴롭힘을 당하다 두 달 치 월급을 받지도 못한 채 해고된 직원도 있었다.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적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폭언과 욕설이 난무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하다. 상기한 대로 오너의 갑질은 물론이거니와 관리자, 직장 선배 등 괴롭힘의 주체도 다양하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한 중소기업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야’라고 부르거나 욕설을 일삼았다. 이처럼 폭언, 욕설을 경험하는 사례는 적지 않은데,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3월 직장인 1000명에게 1년간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을 설문한 결과 14.4%가 폭행·폭언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이런 경험은 2021년 6월 14.2%에서 작년 3월 7.3%까지 줄었다가 다시 배로 늘었는데,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다 기업들이 대면근무로 근무 형태를 되돌리면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더 빈번하게 벌어진다. 지난해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이후 작년 8월까지 3년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업장이 133곳이다. 이중 근로자 수 5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은 93곳,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33곳이다. 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중견·대기업에 속하는 사업장은 7곳에 그쳤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사업장의 약 94.7%가 중소기업인 셈이다.
중소기업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대기업보다 봉급과 성과급이 적고 워라밸을 챙기기 어려우며 복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인력 부족의 원인이 이러한 처우 문제에만 있다고 한정 짓기도 어렵다. 소규모라 ‘가족 같은’ 분위기는 ‘시키면 하라’는 구시대 가부장적 문화로 변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져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인다.
A사의 경우처럼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는 근로자는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직 또는 퇴사 욕구 상승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인력 확보가 경쟁력인 중소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중소기업계의 자정 노력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