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율 가상자산 예치상품 판매에도 위험성 고지 부족
규제 공백에 ‘동일기능ㆍ동일위험ㆍ동일규제’ 목소리 나와
#15일 서울 강남 모처의 한 건물,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델리오 사무실이 자리한 13층 엘리베이터 버튼은 몇 번을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델리오는 전날 오후 늦게 갑작스레 출금 중단을 발표했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 델리오 사무실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직원도 아무도 없었다. 건물 1층 델리오 라운지에도 사람이 없었다. 건물 관계자는 “(델리오)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 폐쇄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하루인베스트에 이어 또 다른 가상자산 예치 사업자인 델리오가 출금 중단과 함께 사무실을 폐쇄했다. 고이율로 투자자를 모집하던 가상자산 예치 업체가 출금을 중단하면서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델리오마저 일방적으로 출금을 중단하면서, 금융당국으로부터 신고를 완료한 가상자산사업자(VASP)도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루인베스트가 입출금을 정지한 13일, 불이 꺼진 하루인베스트 사무실 앞을 서성였던 한 투자자는 기자에게 "하루인베스트에 반, 델리오에 절반 금액을 넣어놨다. 하루인베스트에만 수억 원어치를 맡겼다"고 호소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델리오의 예치금 규모는 수백억 원대에 달한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실태 파악을 위해 받은 델리오 자료에 따르면, 예치금 규모가 1000억 원은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델리오는 그동안 높은 이율과 VASP를 획득한 가상자산 예치·랜딩 1호 사업자라는 타이틀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델리오는 지난해 2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VASP 인가를 획득했다. 다만 델리오가 실제로 가상자산 예치업무로 신고를 한 것은 아니다. FIU는 가상자산 예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신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자본시장의 펀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고객이 맡긴 자산을 재원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나눠준다. 다른 점은 원금과 수익률을 함께 보장한다는 점이다. 이날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1년 예금 평균 금리는 3.23%에 불과하지만, 델리오의 비트코인 1년 예치 상품 이율은 10.7%로 약 3배가 넘는다.
델리오는 위험 자산군에 속하는 비트코인의 큰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원금을 보장하고 높은 이율까지 약속했다. 델리오 홈페이지의 예치서비스 안내 설명문 어디를 살펴보아도 손실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없다.
자본시장의 펀드와 다를 바 없는 상품이지만, 펀드처럼 상품에 대한 설명 의무 부과, 투자 위험 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자본시장에서 펀드 판매자는 펀드 상품의 내용, 투자에 따르는 위험 등에 고객이 이해했음을 서명 등의 방법으로 확인받고, 위험등급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자본시장법은 펀드의 수익 보장과 원금 보전을 금지하고 있다. 펀드에 손실보전ㆍ이익 보장 등이 포함되면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 금융당국이 꾸준히 이야기 해온 ‘동일기능, 동일위험, 동일규제’ 원칙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지난해 9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디지털자산 입법 방향 세미나’에서 “동일한 기능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에 동일한 수준의 위험이 초래되는 경우, 동일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디지털자산이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VASP 신고 수리와 검사 등을 담당하는 FIU는 자금세탁 방지에 업무가 특화돼 있어, 현재 불거진예치 서비스의 횡령 · 배임 의혹 등은 수사의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 행위 규율과 투자자 보호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법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다.
FIU 관계자는 “(FIU)는 자금세탁 거래법 특정금융거래보호법에 따라 자금세탁 중심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투자 사기라든지 횡령 배임은 수사 당국에서 협조가 필요하면 협조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