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수십 년간 우리 국민은 열심히 일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싼 임금,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견디면서 말 그대로 피땀 흘려 일했다. 나라가 발전하면 나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 결과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세계 10위권의 국민총생산 및 수출 규모를 갖게 되었고 유수의 대기업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1인당 소득도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의 생활 형편은 이에 상응해서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 요사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보면 어느 세대 치고 힘들지 않는 세대가 없는 것 같다. 청년들은 취업난, 젊은 부부는 주거난, 장년층은 사교육비 부담과 노후준비에 빠듯한 살림을 살고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들은 자영업이나 저임금 일자리에, 다수 노년층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청년층의 연애·결혼·취업 포기, 세계 최저 출산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 국민의 낮은 행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다수 국민에 대한 보상은 무엇인가? 눈부신 경제발전의 열매는 어디로 갔는가?
박정희 정부는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선성장 후분배’의 기치 속에 대기업 몰아주기식 경제발전을 추진하였다. 주요 산업 내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 기업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노동조합 활동 억제 등을 통해 대기업의 성장과 국가 경제의 신속한 발전을 꾀하였다. 그러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후에도 분배를 제대로 실행한 정부는 없었다. 1980년대 후반의 반짝 임금 상승, 중소기업 수의 증가 등으로 그나마 나아지던 소득 분배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더불어 급속히 악화하였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가 확산되고 비정규직제도가 도입되었다. 세계화 등으로 다수 중소기업은 생존에 급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수 중소기업 근로자는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경제구조 개혁과 동반되었어야 할 사회안전망 구축은 의료보험제도를 제외하면 시늉만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사회안전망의 핵심인 국민연금은 가입대상 및 소득보장성 확대 등이 시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반발, 국가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개혁되지 못했다. 근로자계층에 대한 분배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끝나버렸다.
결국, 한국의 성장은 눈부셨지만 분배는 크게 부족했다. 성장의 열매는 대부분 재벌기업과 소수의 특권층에 돌아갔다. 재벌, 소수의 벤처기업인, 대도시 땅부자 등은 엄청난 부와 이득을 누리고 있으며, 의사 등 전문직과 고위공무원·대학교수·대기업 정규직원 등 소수 근로자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근로자와 소상공인은 생활 수준이 조금 높아진 것 외에 평생 밥 먹고 살기 바빴다. 애들 교육시키고 집 사느라 짊어진 빚 갚는 데 허덕여야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금 기득권층은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을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는 것조차 국가 재정을 이유로 막으려 하고 있다. 국민연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이미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공무원연금, 조만간 적자 전환할 사학연금의 개혁은 미루어둔 채로.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및 금융 지원, 재산소득에 대한 과세 부족 등에 따른 재정여력 감소는 고치지 않은 채로.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을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자 국가의 존재 의의다. 그간의 경제발전 성과를 다수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이며, 서유럽형 중산층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며, 사회통합과 혁신성장을 이루는 지렛대이다. 정부와 국회의 진정성 있는 연금개혁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