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학을 졸업 후, 전셋값을 견딜 수 없어 지방으로 내려와 직장생활 중인 박 모(31) 씨의 말이다. 직장생활 6년 차라면 ‘결혼’과 ‘자동차 구입’ ‘내 집 마련’ 등 다양한 꿈을 꾸는 시기. 하지만 그는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는 처지다. 지난해 5월 은행에서 빌린 1억 원(청년 전·월세 대출 상품)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대출금리는 2.773%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년쯤 지나자 은행이자는 그의 삶을 지치게 했다. 기준금리가 오르자 대출금리가 5%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박 씨가 이용한 대출상품은 2019년 5월 금융위원회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은행권과 협약해 출시한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이다. 전국 은행 14곳(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수협·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카카오·케이뱅크)에서 연 소득 7000만 원 이하의 무주택 청년(만 19~34세)에게 최대 2억 원까지 빌려주고 있다.
청년 전·월세 대출은 청년 정책상품으로 출시된 만큼 ‘저금리 대출’이란 점에 이목이 쏠렸다. 출시 당시에도 보증금 대출은 2.8% 내외, 월세 자금은 2.6% 내외로 일반 전세대출 금리보다 낮다는 점이 홍보됐다. 심지어 작년까지만 해도 2%대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돼 많은 청년이 해당 상품을 이용했다.
기준금리가 오르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변동금리 상품인 청년 전·월세 대출의 대출금리 역시 마구 치솟아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청년 전·월세 대출금리의 최저 기준이 시중은행에서 가장 낮은 편”이라며 상대적으로 저금리임을 강조했지만, 이는 하한선일 뿐이었다.
박 씨를 포함해 많은 청년이 5%대를 훌쩍 넘긴 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상품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청년 전·월세 대출보다 최저금리가 더 낮은 상품도 있다. ‘저금리’청년 대출상품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4일 기준 청년 전·월세 대출의 최저금리는 우리은행(5.19%), 카카오뱅크(4.42%), 케이뱅크(4.35%), 신한은행(4.09%) 등이다. 반면, 우리은행의 ‘우리WON전세대출(고정금리)’상품 최저금리는 4.26%다. 코픽스 신잔액 기준 변동금리 상품도 최저금리가 5.10%로 ‘청년’ 전월세 대출보다 낮다.
청년 전·월세 대출을 받은 20대 초반 청년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은 파산직전이다. 소득이 없거나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모씨(22)는 “고작 몇천만 원 대출받아서 매달 몇십만 원 이자 내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할 수도 있지만, 대학생에게는 한 달 생활비”라며 “당장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대다수를 이자 내는 데 쓰고 있어서 3월에 개강하면 전공 책 살 돈은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청년 전·월세 대출을 이용 중인 대학생 김 모씨(23)는 “올해 1학기 학자금 대출 금리도 연 1.7%로 작년이랑 같다”며 “애초 청년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나온 정책이면 학자금 대출처럼 운영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맞춤형 전·월세 대출은 고금리 시대를 미처 내다보지 못한 정책”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정책금리가 높아지게 되면 (그 상품은)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청년 전·월세 대출 상품을 변동금리로 설정했다면, 그만큼 고금리 기조에서는 정부가 청년들의 이자 부담을 지원하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당 대출을 이용한 청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는, 애초 정책 취지와 어긋난 상품을 설계한 금융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는 “청년에게 국민연금기금 등으로 주거 안정 저리 융자를 지원하거나, 청년들의 이자 지출에 대해 소득공제 및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가 올라간 상황에서 전반적인 금리 환경이 바뀌는 것 자체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소득이 낮은 청년을 중심으로 금리 변동분 중 얼마를 정부에서 지원해줄지 등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