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출 부진이 심화하면서 우리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상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쳐 향후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일 발표한 '2023년 1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부진이 심화함에 따라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둔화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경제동향에서는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달 경제동향에서는 실제로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KDI는 "투자는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으나, 대외 수요 부진으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경기가 둔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투자 지표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으나, 글로벌 경기둔화로 인해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은 최근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1년 전보다 9.5% 줄면서 전월(-14.0%)에 이어 큰 폭의 감소세를 이어갔다. 품목별로는 반도체(-29.1%), 석유화학(-23.8%)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부진했으며, 변동성이 큰 선박(76.1%)을 제외한 수출의 감소세가 지속됐다.
11월 수출물량은 반도체가 감소로 전환되면서 부진이 심화했다. 수출물량지수는 지난해 9월 3.9%에서 10월(-3.2%)에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11월(-6.3%)에는 감소 폭이 확대됐다. 특히, 반도체 수출물량지수는 9월(20.8%), 10월(15.0%)에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11월에는 1.4% 줄면서 감소로 전환했다.
KDI는 "생산 측면에서는 제조업이 자동차 부문의 반등에도 대부분의 품목에서 감소 폭이 확대되며 부진이 가시화됐고, 서비스업도 증가세가 완만해졌다"고 평가했다. 11월 전산업 생산은 전월(2.7%)보다 낮은 0.6%의 증가율을 기록했고, 3.7% 감소한 광공업 생산에서 반도체(-15.0%), 화학제품(-13.7%), 1차 금속(-18.6%) 등 대부분 품목이 큰 폭으로 줄었다. 서비스업 생산도 10월 4.8%에서 11월 2.6%로 증가세가 둔화했다.
금리 인상과 경기둔화 우려로 기업과 가계의 심리지수도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은 계절조정 기준 12월 70에서 올해 1월 71로 소폭 올랐다. 비제조업 업황 BSI 전망은 12월 76에서 올해 1월 76으로 보합세를 보였다. BSI는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도 89.9를 기록하며 전월(86.5)에 이어 기준치(100)를 하회했다.
또한, KDI는 "대내외 금리 인상의 영향이 실물경제에 점진적으로 파급됨에 따라 향후 경기 하방 압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경기 하방 위험도 높게 유지됐다"고 진단했다.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작년 11월 기준 101.7로 전월보다 0.7포인트(p) 떨어져 7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하락 폭은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5월(-0.8p) 이후 30개월 만에 가장 컸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0으로 전월보다 0.2p 하락해 5개월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세계 경제와 관련해선 "산업생산과 교역 증가세가 둔화고, 제조업 심리지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행지수가 하락세를 지속하는 등 글로벌 경기둔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고물가에 대응한 강도 높은 통화긴축 기조로 다수의 국가에서 소비와 제조업 심리 부진이 심화하고 있어 당분간 경기둔화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경제의 경우, 양호한 고용 여건으로 소비가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통화긴축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투자와 기업 심리가 위축되는 등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정책적 지원에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고 주요 경제지표의 부진도 심화하면서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대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