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올바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학 교과서를 보면 정치의 논리는 타협(compromise)의 논리라고 나온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데 타협의 논리와 불완전한 정책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국가 내 존재하는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는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최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갈등과 충돌을 겪게 된다. 이때 어느 한 집단이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되면, 다른 집단은 최악의 결과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설사 특정 집단이 최악의 결과를 강요받지 않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얻은 집단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집단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렇게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
타협은 모든 집단이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에 만족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좋은 정치는 모든 집단이 차선의 결과를 얻도록 하는 예술 행위이다. 그 어떤 집단에도 최선의 결과를 주지 않는 행위이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불만을 갖는 상황을 구현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와 같은 타협의 논리에 충실한 정치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제 논리에 근거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옳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 혹은 도덕 논리에 기댄 비난을 받을 것이다. 절차가 깔끔하지 않다는 이유로 행정 논리를 내세우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내 편을 안 챙겨 주었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의 논리에 근거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전히 최선의 선택을 꿈꾸는 국민과 집단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비난은 훌륭한 정치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 있다. 모든 국민의 칭송을 받는 정치인은 없다. 만약 그러한 정치인이 있다면 불만을 갖는 일부 국민의 입을 효과적으로 막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일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정치인은 끊임없이 타협을 추구하는 전문직이다. 다른 전문직과 달리 정치인이 되기 위한 자격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는 없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자격을 평가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해서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경제의 논리, 법의 논리, 외교의 논리, 종교의 논리, 행정의 논리, 학문의 논리 등과 다른 고유의 정치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정치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정치를 하면 정치를 망치기 쉽다. 정치의 논리를 존중하고, 정치인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이제 다시 한국 정치를 살펴보자. 타협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도 있지만, 자신의 지지층에 최선의 결과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도 있다. 타협이라는 정치의 논리에 충실한 정치인도 있지만, 정치의 논리 대신 법의 논리 혹은 경제의 논리에 충실한 정치인도 있다. 타협을 위해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정치인도 있지만, 자신이 자의적으로 정한 정도에서 벗어난 국민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정치인도 있다. 이 두 종류의 정치인을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선거를 치르지 않는 2023년 한 해 동안 혼란스러운 정치권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안목을 다듬는 연습을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