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회전율, 작년말보다 하락
경기 좋을 때에는 재고 부담 없지만
회전율 하락, 매출부진 이어질 수도
국내 주요 제조기업의 재고자산 회전율이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망 대란을 우려해 앞다퉈 재고 확보에 나섰던 기업들이 이제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쌓이는 재고를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는 향후 매출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27일 본지가 금융감독원과 재계 주요 기업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최근 5년 사이 시가총액 10대 기업(제조업 기준)의 재고자산 회전율은 올 상반기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제조업 기준) 가운데 기아를 제외한 나머지 9곳의 재고자산 회전율이 지난해 연말보다 하락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재고자산 회전율은 지난해 연말보다 각각 0.5포인트와 0.4포인트씩 하락했다. 삼성SDI(4.9→4.7)를 비롯해 SK하이닉스(3.2→2.7), LG화학(4.6→3.9), LG에너지솔루션(4.0→3.1) 등도 하락했다.
현대차의 재고자산 회전율도 지난해 연말 8.3에서 올 상반기 7.4로 감소했다. 반면 기아는 작년 말 기준치(8.0)보다 올해 상반기 회전율(8.3)이 소폭(0.3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규모의 재고자산을 보유했더라도 현대차보다 기아가 더 빨리 이를 매출로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고자산 회전율은 매출액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수치다.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쌓이는 재고자산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자본 수익률이 높아지고 매입채무가 감소하며 상품의 재고 손실이 적다. 수치가 낮으면 판매를 위해 제작한 재고(완성품), 또는 재고 부품 등의 보관일수가 길어지면서 기업에는 재고 부담이 된다.
재고가 아무리 많아도 이 회전율이 높으면 기업으로서는 유리하다.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다는 뜻이다. 거꾸로 재고가 적정수준이어도 회전율이 낮으면 재고는 부담이 된다. 현재 주요 기업이 후자인 상태다. 업종별로 차이가 존재하지만, 경기침체 전망이 이어지는 사이 수요 부진이 시작됐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재고 증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 둔화 국면에서 재고가 늘고 재고자산 회전율까지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활동이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기업의 재고가 매출로 연결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어지다 보니 재고도 증가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말 재고자산은 15조9730억 원(반기 기준) 수준이었지만 올 상반기 재고자산은 21조3902억 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SK하이닉스(33.1%)와 LG에너지솔루션(34.9%), 현대차(22.9%) 등의 재고자산도 지난해 연말 기준 대비 올 상반기 증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주요 원자재와 부자재의 공급망 차질을 대비해 재고자산을 확보한 측면도 존재한다”며 “재고자산의 회전율이 하락한 배경에 갖가지 원인이 존재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선제적으로 재고를 확보한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고자산 회전율과 향후 매출은 고무줄처럼 연결돼 있다”며 “회전율이 먼저 상승하면 뒤따라서 매출이 오른다. 다만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존재하는지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