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 대기업 관계자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하도급 근로자 59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유사한 집단 소송을 진행 중인 포스코 내 다른 소송도 패소할 소지도 커졌다. 포스코는 다른 하도급 근로자들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고용하게 될 시 많게는 수조 원에 달하는 인건비 지출이 예상된다.
또 이와 비슷한 소송을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기아·현대제철·한국GM 등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판결로 인해 이들 기업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도 모두 패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불확실한 경기 속에서 고용 위험성까지 떠안게 될 신세가 된 것이다.
경제의 주축인 대기업들이 똑같은 문제로 줄줄이 소송이 잡혀있는데, 이쯤 되면 기업의 문제라고 보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과 같은 기업들의 문제가 지속 발생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라고만 보면 안 되고, 시스템 문제로 봐야 한다. 특히 사내 하도급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을 경우 많게는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이를 소화할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우선 가장 큰 문제인 노후화된 노동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8년 만든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에 따르면 경비와 청소 등 32개 업종에서 파견근로가 허용된다. 제조업체는 고용 유연성과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내밑도급을 활용한다. 다만 원청은 협력사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는 순간 불법파견으로 간주한다. 도급과 파견근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청이 근로자에게 지휘·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다.
모호한 기준이 바로 이 부분이다. '원청이 근로자에게 지휘·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에 따라 도급과 파견근로가 갈린다'. 기업의 숨통을 터주자고 만든 법이 기업의 발목만 잡고 줄소송을 치르게 만든 셈이다.
시대에 맞게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대법 판결 직후 산업 현장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파견제도에 대해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제는 기업만 채찍질하는 구태적인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포스코부터 찾은 행보에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아 "한국 산업의 견인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첫 행선지를 포스코를 찾은 것은 그가 경제 주축인 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 행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을 위해 법을 바로잡기는커녕 계속해서 나오는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볼 모양이다.
지난 17일 100일 취임식에서 그는 "기업과 경제의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창의적으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 역할을 임기 내 충실히 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