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사청문회 방식이 아니라 인사청문회의 도덕성 검증이 가지는 의의이다. 인사청문회의 주요 목표는 단연코 청문 당사자의 정책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여기에 걸맞은 도덕성은 필수이다. 그러나 도덕성 검증은 주로 여야 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후보자 깎아내리기를 위한 공격과 이에 대한 방어로 이루어지곤 한다.
청문회 도덕성 검증이 문제가 될 때 항상 나오는 변명은 국민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이 없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사 어구 자체가 바로 이들이 일반인과 동떨어진 세상의 상류층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도덕성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직접적인 공정성 훼손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리처드 슈웨더는 대체로 상류층은 도덕성을 단순히 ‘피해가 있나 없나’로 바라보지만, 일반 국민은 ‘차마 그럴 수 없는’ 보편성의 위해를 도덕 훼손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국민의 보편적 도덕 감성은 정의와 평등 실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 이유는 평등과 정의를 다원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왈쩌는 롤스의 정의 개념을 단순평등이라 칭하고 다원적 평등(complex equality)의 정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한마디로 각 영역의 다른 가치들은 다른 분배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인의 분배는 경제영역 내 응분의 몫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종교인의 가치 분배가 정치나 경제영역에서 이루어지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법조인은 법조인의 가치대로, 언론인은 언론인의 가치 분배에 충실해야지 다른 영역에 들어와 자신의 몫을 주장하거나 가져가서는 안 되며 이 원칙을 위배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며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정교분리, 정경유착, 정언유착 금지와 같은 전통적인 자본주의 도덕 철학 내용과도 부합한다. 이러한 다원적 평등 관점에서 인사청문회를 볼 때 오늘날 청문회 방식은 비록 당사자에게는 괴로운 일일 수는 있으나 사회의 평등, 공정, 정의 실현과 정책결정자의 도덕성을 국민이 파악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윤석열 정부 내각에 대해 한일 간 언론사에서 규정한 “노골적이고 당당한 ‘로비스트 정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원적 평등과 정의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인사청문회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위한 로비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아무리 양심적으로 국정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맹세해도 이미 이들의 행위 자체는 기업 가치에 대한 몫의 분배란 그림자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인사청문회 과정은 여야 누가 정권을 획득하더라도 국민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을 보면서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학습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인사청문회는 고위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반듯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품위와 품격 있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