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 그 변화에 따른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하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지점에 크게 공감했는데, 직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정체되지 않고 의미 있는 변화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게 오래도록 하려면 그에 적합한 근력과 유연성을 키워야 하는데, 매 순간 밀도 높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잠시 멈춰 자신을 돌보는 시점을 자주 놓친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은 외부의 자극과 배움에 비해 쏟아내야 하는 양이 많고 설득에 쏟는 에너지도 커서 피로의 누적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러다 연차가 쌓이고 조직의 리더가 되면서 잘할지 못할지 모르는 관리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선배들이 말하는 ‘리더란 말이야’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의 요즘 조직들, 시대에 따라 리더십도 달라져야 한다며 쏟아지는 콘텐츠들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원래 다 그렇게 크는 거야’로는 어떤 위로와 동기 부여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는 순간 ‘뭐든 지금 같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회피의 마음도 생긴다.
‘다음 커리어’보다 ‘어떻게 일하며 살고 싶은가’를 더 고민 중인 그는 팀원과의 면담 중에 ‘버티고 있다’는 답을 듣고서 본인도 좀 더 버텨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동료가 지금보다 나은 시스템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리더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자는 다짐이었다고 한다. 멋진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구성원의 일의 번뇌나 성장과 변화의 욕구를 회사가 모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역량과 의지에 조금 더 귀 기울인다면 이탈이 아닌 방식으로도 개인의 변화와 조직의 리프레시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를 살아가며 새로운 대안과 변화 상황을 예측하는 데에는 간섭이 너무 많다.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애플TV의 ‘WeCrashed(우린폭망했다)’에서 “지금 지닌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앞으로 생길 가능성의 기회들을 잃을 수 있다”던 주인공의 대사가 떠오른다. 어차피 완벽한 선택이라는 건 없다. 그러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삶에 중요한 가치, 내 판단의 이유, 미래의 내가 덜 후회할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 삶의 여정은 연속성을 갖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매끈하게 연결된 선이 아니라 작고 큰 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자세히 보면 징검다리와도 같아서 돌 하나하나는 작지만 단단할 수도, 크지만 얇아서 금방 깨질 수도 있고, 어떤 지점은 간격이 꽤 멀 수도 있다. 여러 돌을 놓고 조심조심 밟아가며 또 때로는 껑충 뛰어 건너며 인생을 만들고 있는 우리는 아마도 ‘바로 다음 돌’이 제일 걱정일 텐데 눈앞의 것만 생각해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다음 돌이 아닌 다다음 돌과 열 걸음쯤 앞의 돌을 상상해 보며 노선을 정해야 한다. 조금 먼 날의 모습은 지금보다 상상의 자유도가 높을 테니 과감해져도 좋다. 확신이 어려운 다음 돌 앞에서 주춤거리기보다 생각을 멀리 줌아웃해서 목적지를 상상해 보고 다시 당겨와 지금의 일을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밟을 돌이니 누가 놔 주기를 무작정 기다리지만 않으면 된다.
물론 지금의 돌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가만히 있으면 몸은 점점 더 경직되고 누군가 툭 치기만 해도 비틀거리게 된다. 지금의 돌을 좀 더 단단하고 넓게 만들지 다음 돌로 무게중심을 옮길지도 정해야겠다. 인생에 꽃길만 있을 수는 없다. 혹여나 꽃길이 계속되고 있다면 향에 취해 또렷한 생각을 잊은 건 아닌지, 돌부리를 만나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의식해야 한다. 각자의 속도나 방법은 다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라앉는다. 천천히 앞으로 가보자.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