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갔어요”...한달간 벌어진 우크라 마을의 비극

입력 2022-04-15 10:47 수정 2022-04-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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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처에 있던 한 노인이 죽었고, 그의 아내가 그 다음에 죽었어요. 그러고는 저쪽에 누워있던 남자가 죽더니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죽었어요.”

러시아군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죽음의 공포와 참혹하고 잔인했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체르니히우 외곽 마을 야히드네에서 살아난 발렌티나 사로얀 할머니는 AP통신 기자와의 만남에서 무섭고 참혹했던 한 달 간의 기억에 몸서리를 칩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300명이 넘는 이 마을 사람들을 학교 지하실로 몰아넣었어요. 전기도, 음식도, 화장실도 없는 캄캄하고 차가운 지하실에서 사람들은 몇 주 동안 하나둘씩 죽어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곁에 있다가 숨을 거둔 사람들의 이름을 지하실 벽에 새겼어요.”

▲러시아군이 떠난 지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인근 야히드네 마을의 학교 지하실에서 발견된 주민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이 떠난 지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인근 야히드네 마을의 학교 지하실에서 발견된 주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야히드네 마을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140km 떨어진 곳입니다. 지난달 초 북부 체르니히우시 주변을 장악한 러시아군은 이 마을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총구를 들이대며 지하실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포격에서 보호한다는 이유로 말이죠.

포로가 된 마을 사람들은 야외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거나 화장실 가는 때를 빼고는 종일 지하실에 갇혔습니다. 가끔 술에 취한 러시아군 병사가 포로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플라스크를 놓고 마시라고 협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숨 막힐 듯 비좁은 환경에서 공포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죽어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어갈 때마다 벽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 숫자가 18명에 이릅니다. 생존자들은 그들을 직접 마을 공동묘지에 묻었습니다.

하지만 포격이 계속되면서 무덤에 안치하는 것도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숨진 이들은 포격이 멈출 때까지 며칠씩 보일러실에 있어야 했습니다.

▲300명 이상의 마을사람들이 갇혀 있던 야히드네의 학교 지하실 벽. 살아남은 사람들은 갇힌 동안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벽에 적었다. AP연합뉴스
▲300명 이상의 마을사람들이 갇혀 있던 야히드네의 학교 지하실 벽. 살아남은 사람들은 갇힌 동안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벽에 적었다. AP연합뉴스
3월 초, 러시아군이 이 마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런 비극은 예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러시아군은 친절했고, 식량을 나눠주겠다고 했으며, 마을의 번창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표했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약탈을 시작했고, 들고 갈 수 있는 건 전부 빼앗았습니다. 심지어 내 아들이 폴란드에서 가져온 태블릿 PC까지 가져갔습니다.” 한 70대 마을 남성은 로이터통신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어떤 이는 TV와 여성 속옷까지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한 달 간 갇혀있던 지하실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야히드네 마을 할아버지. 로이터연합뉴스
▲한 달 간 갇혀있던 지하실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야히드네 마을 할아버지. 로이터연합뉴스
그렇게 악몽같은 한 달 여를 지하실에서 보내고, 드디어 지하실 문이 열렸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공세를 예상한 러시아군이 3월 30일 이곳에서 철수한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포로로 갇혀 있던 지하실 벽에는 휘갈겨 쓴 글자로 ‘4월 1일’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을의 한 주민은 지하실에서 나오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하실)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마을 곳곳은 폭발하지 않은 포탄, 파괴된 러시아 차량 등 러시아군이 남기고 간 잔해로 폐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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