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환율 상승, 국채금리 급등 등 ‘삼중고’ 파도가 덮친 탓이다. 주가와 원화가치·채권값이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제주기가 코로나19 이후 회복과 상승기를 거쳐 둔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2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26.34포인트(0.98%) 하락한 2666.76으로 마감했다. 이는 4월 들어 최저점이다. 코스닥지수도 0.87% 하락한 913.82로 마감하면서 900선이 다시 붕괴할 위기에 직면했다. 4월 들어서만 기관과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약 6조 원어치 팔아치웠다.
국내 증시에서 기관과 외국인의 순매도세가 강해진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진 가운데 중국발 경기둔화 우려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3월 생산자 물가 상승률은 8.3%를 기록하며 시장의 예상을 웃돌았고,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0년 만에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세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발표를 앞둔 경계감과 백악관에서 높은 물가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점 등이 국채금리 상승과 함께 달러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채권 금리도 증시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012년 7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며 연 3%를 넘어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긴축 의지가 재확인되면서 채권 금리는 연일 고점을 높이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해외로 유출돼 주가, 원화가치, 채권값이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경기침체 국면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2월 경기순환시계를 살펴보면 서비스업생산지수, 소매판매액지수, 설비투자지수, 건설기성액,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기대지수 등은 둔화국면에 위치해 있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경제주기가 둔화를 거쳐 하강 국면에 돌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도 부정적 신호다. 우리나라에선 국고채 금리 3년물과 30년물의 첫 역전 현상이 벌어졌고, 미국에선 2년물 국채금리가 10년물 국채금리를 추월하기도 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후엔 예외 없이 경기침체가 발생해 왔다.
서상영 미래에셋 연구원은 “미 증시가 지난 금요일에 이어 국채 금리 급등 여파로 기술주 중심으로 매물이 출회되며 하락한 점은 한국 증시에 부담”이라며 “더 나아가 중국 상해 봉쇄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된 점,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및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이슈가 지속된 점은 외국인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글로벌 주식 전반에 대한 ‘중립’ 의견과 변동성이 강한 장에서 저평가된 자산에 섣불리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장단기 금리 역전(미국채 10년-2년 금리차)이 일정 기간 진행된 후에는 예외 없이 경기 침체 발생했으며 시차는 대략 1~1.5년이었다”며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주식 가격 부담 또는 위험 대비 기대 수익이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 하에 주식자산 전반에 중립 의견 및 미국 기술주 쏠림 완화를 추천한다”라고 조언했다.
반면,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장단기 금리 역전이 경기침체의 전조현상일 수 있지만, 그 시점을 가늠할 수는 없다. 현재 클리블랜드 연은의 경기침체 확률은 4.7%에 불과하다”며 “일시적인 장단기 금리 역전이라면 막연한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심리를 투자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트리플 약세장 우려 속에서 투자자들은 피난처로 금융주와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외국인은 1분기에만 국내 증시에서 7조 원 이상 팔았지만, 금융주는 순매수했다. 외국인 순매수 상위 10개 가운데 4개 종목이 금융주였다.
안정적인 배당 수익률이 장점으로 꼽히는 리츠주들은 연초 대비 평균 3% 이상 상승하며 ‘V자’로 반등하고 있다. 김선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3월 글로벌 리츠 주가는 연초대비 6.3% 상승하며 주식시장 대비 2.6% 아웃퍼폼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완화 기대감 및 연준 긴축재정 우려가 선반영된 효과”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