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이 국방에 더 힘을 실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러시아의 도박을 지켜본 미국 의회는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릴 태세다. 공화당 측은 2023년 회계연도 국방부 기본 예산을 8000억 달러 이상으로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올해 승인된 국방부 예산 740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하원 군사위원회 부의장인 에라인 루리아 의원은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4% 미만인 국방 예산을 5%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환상에서 사람들이 깨어났다”고 말했다.
관건은 늘어난 힘의 배치다. 2018년 이후 미국 국방 전략은 중국과 러시아를 '우선 우려'로 정의하고 북한, 이란, 극단주의 세력을 두 번째 위협으로 간주했다. 일명 ‘2 플러스 3’ 접근법이다. 그러면서도 우선 우려국에서 중국을 첫 번째로, 러시아를 덜 위협적인 대상으로 시선이 조금씩 옮겨왔다. ‘2 플러스 3’가 ‘1 플러스 4’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돼 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 같은 미국의 국방 전략이 재편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실상 서방사회에 ‘선전포고’를 한 데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인근까지 공격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앞마당이 위험에 처한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에 더 적극적인 지원과 전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아르티스 파브릭스 라트비아 국방장관은 “미군이 영구적으로 주둔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도 동맹들의 위기감을 인식하고 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에 ‘9·11’ 경고음”이라고 말했다. 실제 배치 병력을 대폭 끌어올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위기 속 미군 1만5000명 이상을 유럽으로 급파했다. 유럽 내 미군 규모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중국에 초점을 맞춘 방침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초 발표될 예정인 미국의 ‘국가방위전략’에 경계 대상 1순위로 중국, 그다음이 러시아인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평가에 의하면 중국은 외교·기술·군사·지정학적 의미에서 현재와 미래에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며 “러시아는 1년 전에도, 지금도 그 영역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리더라도 전략 자체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다. 수십년 전처럼 유럽에 대규모 전력을 영구 배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미군 운용이 겹치는 부분이 적어 양측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더글라스 루트 나토 주재 전 미국 대사는 “대중국 전력은 해군과 공군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러시아 경계는 주로 태평양에서 제한된 역할을 하는 미군의 지상군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