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가계대출 규제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입력 2022-03-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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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윤석열 후보자가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권교체를 통한 상식과 법치의 실현을 기치로 내세웠던 만큼 많은 영역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번 대선을 반년 남짓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던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시장실패’ 치유를 위한 경우, 그리고 태생적으로 시장 기능이 담당하기 어려운 목표 달성을 위한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다. 전자는 ‘공정경쟁 촉진’으로, 후자는 ‘경제적 약자 보호’로 요약된다. 국민들은 그 정책적 개입의 목표가 정당했는지, 그리고 정책수단이 의도한 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통해 경제정책을 그리고 정부를 평가한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는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의 증가율을 전년 대비 5% 이내로 제한하도록 권고한다. 이에 대하여 은행들은 소위 수익률이 떨어지는 전세자금 대출, 대환대출 등의 중단을 포함한 대응방안을 마련했고, 금융위원회는 그러한 방안들에 대하여 모범대응이라 평가했다. 이후 신규 전세자금 대출 중단이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친다는 원성이 높아지자, 일단 전세자금 대출만 총량규제에서 제외했다.

가계대출 총량규제 이전에는 특정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금융기관에서 더 낮은 이자율로 대환대출을 받아 기존의 대출을 갚는, 소위 ‘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빌미로 은행들은 대환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소위 기존 대출에 대하여 이자율 인하 경쟁을 중단하자고 상호 제안한 셈인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규제가 낳은 담합의 신호가 되었다.

A은행이 정책금리 인상을 이유로 ㄱ 씨의 대출 1000만 원에 대하여 이자율을 인상했다고 하자. 만약 ㄱ 씨가 B은행에서 더 낮은 이자율로 대환대출을 받아서 A은행에 상환한다면, 경제 전체의 가계대출 총량은 늘지 않는다. 대환대출을 통한 은행 간 경쟁이 촉진되면, 은행들은 이자율을 임의로 조정하기 어렵다. 이에 더하여 대환대출 시 원대출금의 3% 이상을 차주가, 나머지 잔여분을 대환대출 은행이 상환토록 유도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ㄱ 씨가 30만 원은 자신이 부담하고 대출 갈아타기를 했다면, 당연히 ㄱ 씨의 향후 이자 부담은 줄고, 경제 전체의 가계대출 총량은 오히려 30만 원 줄었을 것이다.

실질적인 각 은행의 ‘대출총량’과 규제 목적의 ‘규제대출총량’을 구분하여, 대환대출 금액을 원대출 은행의 ‘규제대출총량’에 더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와 아울러 대환대출과 관련된 각종 수수료를 없앴더라면, 은행들은 자신들의 ‘규제대출총량’에 잡히지 않는 대환대출 고객을 잡기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받은 고금리 대출을 제1금융권에서 대환대출해 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뒤늦게 금융 소비자들이 금리인하 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실행되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기에 까다로운 금리인하 요구권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그런 차주에게만 금리 인하의 특혜를 주는 것이 ‘경제적 약자 보호’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더 나아가 대출 갈아타기가 안되는 차주들에게 흔쾌히 금리를 낮춰줄 경영진은 없다. 경영진도 주주들에게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필요했을까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경쟁을 제한하고 약자를 외면하는 규제 방식은 정당화될 수 없다. 여당으로서는,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표 차이가 0.7%포인트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선거를 반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금융기관 간 담합을 통한 역대급 실적 잔치를 용인하면서 그 대가를 유권자들에게 전가한 부분은 뼈아픈 실책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공정경쟁 촉진’과 ‘경제적 약자 보호’ 어느 것에도 부합되지 않는 또 다른 예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에 직접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아시아나 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한 사례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예가 떠오른다. 현 정부가 모든 경제정책을 원칙과 전제에 비추어 세밀하게 검토했더라면, 지금의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새 정부의 금융·경제 분야 인수위원회나 정부 조직에서 일하게 되실 분들은, ‘공정경쟁 촉진’과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큰 틀 속에서 막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작은 정책과 조항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면밀한 검토와 재검토를 반복하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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