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설립 이후 최장수 근무자. 역대 세 번째로 연임한 총재. 사상 최초로 0%대 기준금리를 만든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는 이달 말 한은 총재 자리에서 떠난다. 이 총재는 다양한 기록을 쓰고 임기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43년간 한은에 몸담은 그는 1950년 한은 설립 이후 최장기 근무자다.
2018년에는 1974년 이후 44년 만에 연임한 총재가 됐다. 역대 세 번째 사례였다. 특히 재정경제부 장관이 맡던 금통위 의장직을 넘겨받아 한은 총재가 통화 당국의 수장이 된 1998년 이후로는 첫 연임이었다.
“항공모함을 운항하듯이 단기적으로 보는 게 아니고 통화정책은 적어도 1년 후의 경제 상황을 보고 결정하거든요.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태생적으로 있어요. 내다보는 것이 과연 그대로 될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해야 하나요.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좀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할 겁니다.”
이주열 총재가 지난달 24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8년간의 임기를 되돌아보며 한 말이다. 정확히는 ‘8년간 잘한 통화정책과 아쉬운 통화정책이 각각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금리는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준다”라며 “이에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숙고의 숙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총재는 경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기간 중 가장 높았던 기준금리는 2014년 4월 취임할 당시 2.5%였다. 2015년 무렵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이 총재는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가동하며 호흡을 맞췄다.
그는 평소에는 차분하지만, 상황에 따라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이 총재는 2020년 3월 16일 임시 금통위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내리는 ‘빅 컷’을 단행했다. 그해 5월 추가로 금리를 내려 0.5%로 만들었다. 기준금리를 0%대로 만든 첫 번째 한은 총재였다.
다만 이 총재가 참석한 마지막 금통위에서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1.25% ‘동결’ 결정을 내리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일을 안 하는 것 같다는 말도 있는데 동결도 똑같이 신중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이라고 했다.
재임 기간 이 총재는 유연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한은 노동조합이 직원 7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5%가 이 총재의 지난 8년간의 통화정책에 대해 ‘우수’ 또는 ‘매우 우수’라고 평가했다. 응답자 중 50.2%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미흡’ 또는 ‘매우 미흡’이라는 응답은 19.3%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