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기업 수평적 조직, 제도 아닌 문화로 내재화돼야

입력 2022-01-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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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교수

지난해 연말 진행된 대기업의 임원인사 핵심은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는 데 있었다. 삼성, LG, SK, 롯데, CJ 등 임원인사를 발표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요소는 임원 직급의 축소 또는 ‘님’ 호칭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조직으로의 전환이었다. 위기의식을 실감한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진이 직접 수평적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삼성은 전무와 부사장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연한)을 전격 폐지하였다. SK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상무-전무-부사장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통일하였고 임원 미만 직급을 통합·축소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임원인사를 발표한 CJ는 그룹 차원의 임원 직급을 모두 경영리더로 통합하였다.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산업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지고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수직적 구조와 최고경영진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방식으로는 미래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 극대화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은 기업에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둘째, 이른바 MZ세대를 중심으로 수직적 권위와 위계서열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공정한 실력과 절차를 주장하는 젊은 직원들은 오너의 명령을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조직관리 방식을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이라고 비판한다. 젊은 우수인재의 유치를 위해서도 수평적 조직은 불가피하다.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 혁신을 기업들이 주장하며 수평적 조직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지만, 의외로 현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의 입장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실제 수평적 조직을 위해 임원을 중심으로 직급이 폐지되거나 님 호칭이 확산되고 있지만 구성원들은 이에 대해 긍정보다 비판적 입장이 우세한 편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성과 측정 방식이 모호해진 점, 승진 및 연봉 인상의 객관적 기준이 사라진 점, 연구직 및 개발직과 달리 경영지원 부서의 경우 객관적 측정이 어려워 승진에서 불리한 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보다 불안정성이 더 확대되어 치열한 경쟁 및 사내정치가 한층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제도만으로는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2000년 CJ그룹이 국내 최초로 ‘님’ 호칭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부장님, 상무님이라고 부르는 등 님 호칭이 정착되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 및 IT기업들이 님 호칭을 앞다투어 벤치마킹했지만 이들 기업 역시 이를 100% 내재화하진 못했다.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도 문화는 여전히 수직적인데 제도만 바꾼다고 수평적 조직이 될 수 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10년 전 수평적 조직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스타트업 제도 및 문화혁신 등을 내세웠지만 목청만 요란했을 뿐 그 후 구성원에게 유연한 조직으로 인정받은 기업은 사실 전무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연하고 젊은 조직으로 알려진 일부 IT기업에서도 지난해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임원들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갑질이었다. 채용설명회 등을 통해 자율성, 유연성을 지닌 수평적 조직으로 홍보한 기업들의 경영진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여전히 수직적 잔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상당수 글로벌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수평적 조직운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다수의 학술연구에서도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조직의 창의성이 확대되고 혁신성과가 더 많이 창출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솔선수범, 그리고 제도와 문화가 함께 내재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하려는 건 분명 바람직한 흐름이다. 다만,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각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직접 언행을 통해 임직원에게 낮은 자세를 보이며 조직문화가 달라졌다는 것을 구성원에게 입증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문화로 내재화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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