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포와 생활필수재의 절대 부족으로 힘들던 대다수 영국인들 사이에서 일개 정치인이자 공무원이었던 베버리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보장 시스템 제안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은 얼핏 믿기 힘들다. 오늘날 영국과 한국,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염두에 둘 때, 1942년 당시 베버리지 보고서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은 오늘날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성공 요인으로는 타이밍을 꼽을 수 있다. 발표 직전인 1942년 11월 이집트 전투에서의 승리는 영국인들에게 종전의 희망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인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의 회복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42년 초반부터 약 9개월에 걸친 사회보험 조사의 책임자였던 베버리지의 신념과 1943년 당시 수상이었던 처칠이 지명한 일명 재건위원회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베버리지 보고서는 흐지부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2012년 영국 하원의원이었던 리암 번에 의하면, 클레멘트 애틀리, 어니스트 베빈, 허버트 모리슨 등으로 구성된 재건위원회와 함께 베버리지는 종전 이후 영국이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토대 위에 재건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재건위원회와 베버리지의 신념과 노력은 1944년 완전고용 백서의 발표를 거쳐 마침내 1946년 전국민 사회보험과 전국민 건강서비스의 법률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에서 영국의 몇몇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보여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감염병과의 전쟁이 한창인 2022년 한국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베버리지가 척결하고자 하였던 다섯 가지 해악, 즉 결핍, 질병, 불결, 무지, 게으름에 대하여 지금 현재 한국사회는 얼마만큼 해결하였는가이다. 다음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과감한 시도인 여러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를 기획하고 법률화하였던 베버리지와 재건위원회처럼 거대한 신념의 실현을 위하여 충분한 대화와 끈기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있는가이다. 감염병과의 전쟁이 잠잠해질 때 급속히 진행될 디지털 산업구조로의 대전환에 대해, 베버리지와 재건위원회처럼 연대감과 소속감, 책임과 양보에 기반한 새로운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22년 한국사회는 다음의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를 상상할지도 모른다. 감염병 시기 이전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일탈로 인해 사회적·경제적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보고서를 상상할지도 모른다. 디지털 태평성대 속에 역설적으로 생계비, 의료비, 주거비를 걱정하고 비관하는 이웃과 동료가 없도록 시민 모두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새로운 사회보장 시스템이 담긴 보고서를 상상할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사회적, 물리적, 제도적 자원이 공평하게 보장되는 시스템을 과감하게 선도하는 보고서를 학수고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