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낯설고 새로운 것, 그 어색함을 즐길 수 있기를

최소현 퍼셉션 대표

글로벌 컬러 전문 연구소이자 기업인 팬톤(Pantone)은 매년 환경·사회·경제 및 문화 등 우리를 둘러싼 현상들과 다양한 트렌드 분석을 통해 다가올 해의 컬러를 제안한다. 2021년의 컬러는 견고함과 신뢰를 나타내며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얼티밋그레이’와 빛이 스며들어 생기를 만들며 희망의 에너지를 연상시키는 ‘일루미네이팅’이었다. 이 제안은 20여 년 이상 패션과 그래픽디자인, 리테일과 인테리어·산업디자인 등 여러 산업 전반에 걸쳐 제품 개발과 고객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데, 올해도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이 컬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공개된 2022년 ‘팬톤 올해의 컬러’로는 기존 팬톤 컬러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 팬톤이 제안한 것은 제비꽃의 색을 닮았다는 ‘베리 페리(Very Peri)’(www.pantone.com/color-of-the-year-2022)로 명쾌하고 시원한 파란색과 에너지 넘치고 따뜻한 빨간색이 섞인, 그야말로 청명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보라색이다. 팬톤은 ‘베리 페리’에 대해 “코로나 극복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개인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독려하는 컬러를 제안하기 위해 기존에 없던 색상을 고안했다”며 “이 독특한 컬러는 격변의 시대 및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가 마주할 세계는 모호하지만 그만큼 확장된 가능성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컬러 전문 연구소 팬톤이 2022년 ‘올해의 컬러’로 제안한 ‘베리 페리(Very Peri)’. 사진출처=www.pantone.com/color-of-the-year-2022

예로부터 보라색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되었는데, 극단에 있는 빨강과 파랑이 섞여 독특하며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색으로 신비롭고 고귀한 느낌을 주어 귀족이나 왕실의 상징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심리학에서는 보라색을 ‘대립되는 양면성이 혼재하는 심리를 나타내고 우울함을 표현하기도 하며, 심신이 피로할 때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치유의 색’으로 보기도 했다. 또 보라색은 물질세계와 영적세계의 경계를 초월하는 미지의 공간을 표현하고자 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이 오묘한 색은 ‘신비스러움·고귀함·귀족적·초자아·희망’ 등의 긍정적인 의미와 ‘고독·광기·우울·상처·불안·죽음·어둠’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한때는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광기 있거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직관력과 통찰력·상상력·독특한 개성으로도 연결되어 예술적인 감각이 풍부하다고도 해석된다. 실제로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비전을 위한 새로운 색으로 팬톤이 제안한, 이 귀하면서도 애매한 색은 우리가 만날 미래는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불안감 그리고 신비로움과 설렘이 공존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의 조화·일관성과 역동성의 균형·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인 파랑과 빨강의 밍글링(mingling·섞임)이 우리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팬톤은 전 인류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발상의 전환·호기심·상상력에 기반한 창의성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베리 페리’를 제안하지 않았을까. 극단의 것을 융합하는 시도와 대담한 도전 또한 우리에게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2022년의 컬러 ‘베리 페리’는 중명도의 밝기를 가진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색으로 기존의 여러 맥락과 조화가 쉽지 않고, 잘못 쓰면 매우 어색할 수 있는 소화하기 어려운 색이다. 이 낯설고 새로운 컬러를 보며 다가오는 내일을 마주하는 데 있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며, 어느 정도의 위험 요인을 감수할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안온했던 날들을 그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때때로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다시 모두가 괜찮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베리 페일’을 마음의 부적으로 삼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