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미국에선 주주행동주의 차원에서 ESG가 강조되기도 한다.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ESG 성과가 저조한 경영진의 연임과 연봉인상에 반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일반투자자들도 주주제안권 행사를 통해 ESG 성과와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예컨대 포춘 250대 기업의 경우 올해 행사된 주주제안권 중 21%가 ESG 관련이다. 종전에는 지배구조(G)에 집중되었으나 점차 환경(E)과 사회(S)로 이슈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ESG는 신용평가에도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ESG 이슈가 제품수요, 평판, 생산비용, 재무적 이점 등에 미치는 영향을 신용등급에 반영한다. 실제로 일부 에너지회사에 대해 산불위험과 뇌물 스캔들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낮춘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주로 신용평가항목 중 산업위험 파트에 ESG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국가정책 차원에서 ESG가 강조되기도 한다. 유럽은 탄소중립과 지속가능경제라는 EU 차원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2014년에 비재무공시지침(NFRD)을 제정했다. 최근에는 이를 더 강화한 지속가능공시지침(CSRD)을 마련하고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2017년에 발표된 기후관련 재무공시협의체(TCFD)의 권고안도 기후변화가 개별 기업의 신용위험을 초래하고 이것이 전체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투자결정, 주주권 행사, 신용평가, 기업공시라는 자본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지속가능사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기차익에 기울기 쉬운 자본시장이 지속가능성을 중시하여 기업을 선별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바람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가 있다. 양질의 ESG 정보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ESG 정보의 양이 적거나 부정확하다면 앞서 말한 자본시장의 순기능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인지 요즘 ESG 정보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에선 내로라하는 투자기관들이 주주서한과 ESG 설문을 통해 상장회사의 경영진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18년엔 의무공시 도입을 감독기관에 집단으로 청원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엔 ESG 공시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ESG 경영을 촉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현재까지 미국은 감독기관의 가이드라인으로 자율공시를 유도하는 반면, 유럽은 EU 차원에서 의무공시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의무공시를 도입하되 기업의 부담을 감안하여 법정공시보단 거래소 공시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ESG 공시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의무공시에 잘 적응하도록 효과적인 공시표준을 마련하고 충분한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ESG 공시는 정보의 중요성(materiality) 판단 책임이 기업에 있고, 다수의 예측정보를 포함하며, 산업별 특성이 강해서 기업의 공시역량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와 연내 오픈 예정인 ESG 정보포탈은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기업들도 새로운 의무공시 도입을 앞두고 공시역량을 키우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ESG가 중요한 만큼 ESG 공시도 중요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