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선두 주자를 따라잡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까?

입력 2021-1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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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리서치 대표

한국은 반도체,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스마트폰 등 주요 핵심 품목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도 열심히 하면 1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악전고투에서 나타나듯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추격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학습곡선’ 때문이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생산단가가 떨어진다!

여기서 학습곡선이란 생산 과정에서 쌓인 경험 덕분에 점점 생산성이 향상되는 현상을 뜻한다. 농업이나 경공업은 생산이 거듭됨에 따라 토양이 척박해지고 기계가 노후화돼 생산성이 오히려 후퇴되곤 한다. 그러나 자본 투입이 많고 기술 발전 속도가 높은 산업, 예를 들어 비행기 제조업에서는 생산량이 늘어날 때마다 생산단가가 떨어지는 일이 빚어지곤 한다.

기업 내부에서만 인지되던 학습곡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전투기 제조회사 록히드의 여객기 생산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록히드는 1971년 신형 여객기 ‘트라이스타’를 출시하며 민간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베트남전이 마무리되면 군용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트라이스타는 최첨단 자동 항법 장치를 채택한 것은 물론, 영국 롤스로이스가 개발한 혁신적인 엔진을 탑재하는 등 탁월한 성능을 자랑했다.

그러나 우베 라인하르트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는 트라이스타의 생산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트라이스타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록히드는 그의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다 결국 마틴과 합병됨으로써, 라인하르트 교수는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라인하르트 교수는 군용 전투기 생산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을 활용해 트라이스타의 생산량이 두 배 늘어날 때마다 생산단가가 일정 비율(22.6%) 절감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예를 들어, 트라이스타 1024대를 만든 후의 평균 생산비용은 첫 번째 비행기 생산 비용의 14분의 1 수준까지 내려간다. 강력한 비용 절감이 지속되는 이유는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관리자, 그리고 부품 업체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계산을 바탕으로 라인하르트 교수는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의 경쟁자들이 이미 오랜 기간 학습곡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해 왔다고 지적하며, 록히드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록히드가 대형 여객기 생산이 처음이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생산단가를 신속하게 떨어뜨리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록히드는 경쟁기업의 가격인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여객기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후발주자는 영원히 추격할 수 없나?

여객기 산업만 아니라 반도체나 조선 등 생산성 향상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분야에서 추격자는 선두주자를 추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는 경우, 다시 말해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기술 혹은 시장이 출현할 때에는 추격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일이 가능하다.

기업 혁신 분야의 대가,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존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존속성’ 혁신과 제품의 규격 혹은 가치 판단의 잣대가 달라지는 ‘파괴적 혁신’이 출현할 때에는 추격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강조한다. 파괴적 혁신이 시장의 판도를 바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중반 메모리용 반도체 시장이었다. 당시 일본 반도체 업계는 기업용 컴퓨터 시장에서 높은 품질경쟁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누리고 있었기에,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출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PC 시장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적인 PC 운영체제 ‘윈도우 95’를 출시하고, 인터넷 붐이 세계를 강타함에 따라 PC 시장이 주류로 부상했다. 그리고 PC가 2~3년 주기로 교체가 빈번하게 이뤄지며, 기술혁신이 매우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해 ‘절대가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분야를 파고든 것이 한국이나 대만의 메모리용 반도체 회사였다. 이들은 ‘적정한 성능을 가진 저렴한 부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고, 고가의 신기술보다는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일본 반도체 기업을 연쇄적인 파산의 늪에 몰아넣었다.

물론 지금 당장 한국이 1위를 달리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중국의 몰락을 기뻐하기에 앞서 판도 변화를 촉발할 변화 요인이 없는지 늘 점검하고 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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