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또 세계 최초로 뭔가를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법안의 핵심은 ‘인앱결제’ 강제 금지다.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앱 마켓을 운영하는 구글, 애플 등 사업자는 앞으로 앱 안에서 유료 콘텐츠를 결제할 때 자사의 결제 시스템을 쓰게 하는 인앱결제를 강제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지난해 말 구글은 올해 10월부터 게임에만 적용되던 인앱결제를 웹툰, 웹 소설, 음원, 오디오 등 앱 내 모든 디지털 콘텐츠로 늘리겠다고 했다. 수수료도 기존 15%에서 30%로 높이겠다고 하면서 업계의 반발이 극심했다. 구글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개발사와 이용자들을 종속시키려 한다는 지적과 콘텐츠 산업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공감한 정부와 국회가 규제 마련에 나섰고, 그 결과 ‘구글 갑질 방지법’이란 별칭을 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탄생했다.
빅테크 기업(대형 IT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된 만큼 해외의 반응은 뜨겁다. 미국과 유럽도 한국 상황을 지켜봤다. IT 공룡들의 독과점 체제를 막을 규제책을 각자 준비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먼저 출발선에 나서주길 바란 것만 같다. 미국 상원에는 대형 앱 마켓 사업자에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고, 유럽연합(EU)도 빅테크 관련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제2, 제3의 갑질 방지법이 생겨날 가능성도 크다.
전 세계 곳곳에서 강제 금지를 검토하고 있는 인앱결제의 핵심은 수수료다. 앱 마켓이 제공하는 자체 결제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개발사는 결제금액 일부를 앱 마켓에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 외부 결제시스템을 쓰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내게 되는 것이니 일종의 ‘사용료’처럼 느껴진다.
지구 전체의 앱 마켓 시장을 양분하는 구글과 애플이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고, 나아가 더 큰 이익을 위해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모습은 어딘지 익숙하다. 플랫폼과 입점사 간 갈등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배달 앱과 자영업자, 모빌리티 기술 기업과 택시ㆍ대리운전 기사 등 갈등을 지켜봐 온 입장에선 복잡한 마음이 든다. 네이버와 카카오 기사에 으레 달리곤 하는 “작작 좀 하라(사업을 확장하라)”는 댓글도 떠오른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중소 사업자나 입주사의 부담은 커지고 있단 지적도 최근 급증하는 모습이다.
‘세계 최초’인 만큼 한국이 만든 빅테크 규제 법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법안에 기뻐하며 “나는 한국인”이라고 선언한 미국인 CEO까지 있으니, 국내 IT 산업계와 정부ㆍ국회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점차 공고히 해나가는 한국산 IT 공룡들의 고민도 깊어져야 할 때다. 상생과 혁신 사이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