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왜 이리 오를까? 짜장면값이 50년간 233배 오른 것이 잘못된 정책의 결과일까? 정부와 중앙은행이 그토록 오랫동안 물가 안정에 무력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서민들은 물가 인상에 늘 가슴 졸였지만 짜장면이 여전히 30원이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은 반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실업률이 2%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경제활동인구가 변화하지 않는 한 실업자 수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율은 다르다. 그것이 일정하게 유지되더라도 물가는 여전히 일정하게 오른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율 목표치를 0%가 아닌 2%로 잡고 있다. 중앙은행도 물가는 시간에 따라 오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속도가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짜장면값이 세월 따라 오른 것은 자연스럽다. 제조업 제품의 경우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 가격 상승이 억제될 수 있다. 그런데도 짜장면값은 50년간 233배가 올랐다. 그렇다면 공급 조절이 어려운 데다 짜장면과 달리 보관하기가 쉬워서 수요도 많은 부동산은 어떨까? 부동산 가격은 세월이 흐르면 일반 제품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왜 가격은 시간이 지나면 오를까? 달리 말해 화폐가치는 왜 세월이 가면 떨어질까? 우리는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사실 자체는 인생 경험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다. 1970년에 1000원이면 식구들이 고깃국을 포식할 수 있었다. 지금 100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필자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동안 화폐가치가 세월이 가면 떨어지는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추론해 보면 그 이유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통화량이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은 생산량 증가를 말한다.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통화량이 고정되어 있으면 물가는 하락한다. 통화량은 고정되어 있는데 대변해야 하는 상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 경제는 성장하지 못하고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그 이유는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지적했듯이 부채 부담의 증가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온갖 상품의 가격이 떨어져도, 생산을 위해 빌린 부채의 액면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생산품을 다 팔더라도 낮은 가격 때문에 사업 빚을 다 갚지 못해서 파산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맞춰 통화량이 늘어나야만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다시 통계로 돌아가자.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시장가격으로 1970년부터 2020년까지 688배나 늘었다. 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데다 물가가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화량은 얼마나 늘었을까? 유통화폐인 M1(현금+은행예금)은 이 기간 동안 3580배 늘었다. 앞서 말했듯이 증가 속도가 문제일 수 있지만 화폐가 늘고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생산품은 가격의 상승폭이 그래도 제한적이지만, 공급을 조절하기 힘든 부동산은 가격 상승폭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강남 한 지역의 땅값은 50년간 최소한으로 잡아도 1250배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절대 수준을 잡겠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시도일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부동산 가격의 절대 수준을 지키겠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은 투기가 없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오른다는 점을 인정하고, 가격 상승을 무리하게 억제하기보다는 상승분을 사회로 환원하여 사회 성원 모두가 그 결과를 최대한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