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위기 계기로 경제력으로 미국과 경쟁
최소한의 기준· 행동규범 확립해야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심화하던 1952년, 국제 정치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이던 아놀드 볼퍼스가 했던 말이다. ‘적색 공포’의 매카시 선풍이 휘몰아쳤던 시대이기도 하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사회 우경화가 가져올 정책의 왜곡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이 문구에서 ‘국가안보’를 ‘경제안보’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미·중 대립이 깊어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2개국(G2,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배경으로 ‘경제안보’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두 국가의 패권 경쟁 속에서 경제를 도구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람, 물건, 돈의 자유로운 흐름에 의한 번영과 안정을 목표로 했던 ‘경제 우선의 시대’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하지만 안보를 전면에 내세운 국가의 행동이 시장을 왜곡하는 등의 폐해도 눈에 띈다.
경제가 대외 정책의 공식 무대에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바로 중국의 부상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힘차게 성장하던 중국이 자국의 경제력을 앞세워 자기주장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냉전 시절 군사력에서 미국과 겨뤘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최대 감점인 경제로 싸움을 걸었고, 이것이 경제를 전략적인 수단으로 끌어올리는 큰 요인이 됐다.
최근까지도 중국은 광역경제권 일대일로(신실크로드 전략),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윤택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세를 강화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서 보여주듯, 커지는 시장과 왕성한 구매력을 마음껏 정치에 이용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을 미국도 가만히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경제안보는 국가안보 그 자체”라며 강력한 반격을 시도했다. 관세 인상 등으로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중국에 자국 제도의 개혁을 강요하는가 하면, 수출·투자 규제 강화 및 주요 기술의 보호·육성에 대한 수단을 연마해갔다.
하지만 이러한 트럼프 전 정권의 강력한 대중 제재는 되레 미국 경제에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 관세 폭탄을 퍼부었지만, 대중 무역 적자는 오히려 늘었다. 애꿎은 미국 소비자들만 더 높은 생필품 가격을 부담해야 했다. 대중 반도체 산업 제재가 공급망을 뒤흔들어 글로벌 반도체 대란을 야기, 결과적으로 미국 업체에도 타격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경제안보에는 제도의 남용과 같은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뿌리 깊은 문제도 있다. 경제와 안보가 본질적으로 지향점이 다르다는 모순이다.
경제가 ‘윈-윈’의 개념이라면, 안보는 ‘제로섬’이다. 경제는 교역이나 국제 분업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이익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국이 서로를 도움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보는 ‘윈-윈’ 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안보에서 중요한 것은 타국에 비해 자국이 얼마나 우위에 있냐는 상대적인 위상이다. 자국의 힘이 더해져도 다른 나라가 그걸 넘어선 힘이 있다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제로섬’의 발상이 뿌리 깊다. 이 때문에 종종 스스로를 아프게 해서라도 상대국의 국력을 갉아먹겠다는 정책을 취하기도 한다. 무역 투자 등 제재 조치가 바로 그러한 예다.
서로 대립하는 안보와 경제를 양립시키려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합리적인 국제 규칙의 제정이다. 각국이 필요할 때 물품을 융통할 수 있도록 적어도 공통의 기준이나 행동의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타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물품 등을 자체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는데, 오히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급망과 고객을 연결하는 능력이야말로 안전을 보장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아울러 경제 제재 등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도 과제로 떠올랐다고 닛케이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