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 열전] 평가 엇갈리는 ‘귀뚜라미 재상’, 가사도

입력 2021-07-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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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시대 권신으로 송나라 망국 재촉한 원흉…공전법(公田法)으로 국고 충실히

가사도(賈似道·1213~1275)는 남송 이종(理宗) 때의 권상(權相)이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간신이자 졸장 중의 졸장으로서 송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원흉으로 평가되고 있다.

누나 가귀비 배경, 황제와 동등한 권력

가사도는 누나 가귀비(賈貴妃)를 배경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때 북방에서는 몽골이 칭기즈 칸의 출현 이래 크게 세력을 떨치며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은 송나라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송나라 황제는 우승상이던 가사도에게 출정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가사도는 몰래 몽골군과 만나 송나라 조정이 몽골에 진공(進貢)할 것이라고 했으나 몽골군의 홀필열(忽必烈) 장군은 거부하였다. 그 뒤 몽골의 대한(大汗) 몽가(蒙哥)가 전사했는데, 가사도는 홀필열이 얼른 귀국하여 제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홀필열에게 신하를 칭하며 매년 20만 냥의 은과 20만 필의 비단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비밀화의’ 뒤에 몽골군은 철수하였다. 가사도는 ‘일찍이 없었던 대첩’으로 기록한 승전 첩보를 조정에 보냈다.

송나라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승전보였다. 황제는 가사도를 크게 찬양하면서 문무백관들로 하여금 가사도의 ‘개선’을 성대하게 맞으라고 명하였다. 황제는 가사도에게 신하들이 황제에게 행하는 의식을 면제시켰고, 10일에 한 번만 조정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특권을 주었다. 가사도는 황제와 다름없는 권한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가사도는 국정의 전권을 쥐게 되었고, 그의 재산은 국가 재정과 맞먹을 정도에 이르렀다.

“조정엔 재상이 없고, 호숫가에…”

1267년, 몽골군이 상양(襄陽)을 포위했다. 변방이 백척간두에 달려 있다는 문서가 계속 조정에 보고되었다. 하지만 가사도는 자기의 놀이와 향락이 우선이고 국사는 그 다음이었다. 그는 올라오는 모든 문서를 가로채고 일체 조정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귀뚜라미 싸움을 너무 좋아하여 어전회의 때도 귀뚜라미를 품에 품고 다녔다. 이 때문에 어전회의 중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소매에서 귀뚜라미가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귀뚜라미가 황제의 수염에 뛰어오르기도 하였다.

황제는 그에게 궁궐 맞은편의 서호(西湖) 호숫가에 정원을 하사하였다. 가사도는 그곳을 화려하게 꾸며 후락원(后樂園)이라 칭했다. 그는 조정에 나가는 대신 매일 호숫가 정원으로 출근하였다. 그러고는 창기들과 여승 그리고 옛 궁녀들을 불러모아 주야장천 뱃놀이와 음란한 잔치를 벌였다.

가사도의 어릴 적 고향친구들은 이곳을 출입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귀뚜라미 싸움이 거나하게 벌어졌다. 언젠가 한 고향 친구가 가사도의 어깨를 툭 치면서 “이 싸움이 재상의 군사(軍事) 대사구나!”라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로부터 “조정에는 재상이 없고, 호숫가에 재상이 있다!”는 말이 퍼지게 되었다.

몽골과 전투서 도주, 비참한 최후

귀뚜라미에 관한 한, 가사도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일찍이 ‘귀뚜라미 재상’이라고도 불린 그는 세계 최초로 귀뚜라미에 대한 전문서적인 ‘촉직경(促織經)’이라는 책을 펴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가충(賈蟲)’, 즉 ‘가씨 벌레’라 불렀다.

1274년,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몽골은 이미 악주(鄂州)를 점령하였다. 온 조정이 가사도에게 출정 압박을 가하자 가사도도 마지못해 출정하였다. 그는 몽골의 승상 백안(伯顔)에게 선물을 바치면서 땅을 떼어주고 배상금을 바치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백안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제안이 거부되자 가사도는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지휘하는 13만 대군을 버리고 몇몇 부하들과 함께 작은 배로 도망쳤다. 결국 송나라는 안휘성 정가주(丁家洲)에서 대패하였고, 사상자와 도망친 병사의 수는 부지기수였다. 몽골군은 순식간에 송나라의 수도 임안을 포위하였다.

그러자 조정은 가사도를 파면하라는 소리로 가득 찼다. 조정 실권을 쥐고 있던 황후도 할 수 없이 가사도를 파면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사도를 처형시키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가사도는 멀리 광동 지방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때 과거에 가사도에 의해 전 가족이 화를 입었던 정호신(鄭虎臣)이라는 현위(縣尉)가 가족의 복수를 위하여 일부러 가사도를 수행해 유배지에 가겠노라고 자원하였다.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정호신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가사도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강박했다. 하지만 가사도는 구차하게라도 어떻게든 살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계속 정호신이 압박을 가하자 가사도는 약을 마시고 죽고자 하였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구토만 했을 뿐이었다. 마침내 정호신은 그를 변소에 데려가 죽였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남송(南宋) 말의 권상(權相) 가사도(賈似道). 송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원흉으로 비판받지만, 공전법과 타산법을 제정하는 등 내치에서의 업적은 평가받을 만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송(南宋) 말의 권상(權相) 가사도(賈似道). 송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원흉으로 비판받지만, 공전법과 타산법을 제정하는 등 내치에서의 업적은 평가받을 만하다는 주장도 있다.

토지개혁 ‘공전법’·군정개혁 ‘타산법’

중국의 어떤 왕조도 말기에 이르면 예외 없이 권신(權臣)들의 대토지 소유가 만연해졌고, 그것은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남송 말엽 역시 권신들의 토지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정은 대토지 억제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정부 재정으로 사들이는 미봉책에 급급할 뿐이었다. 더구나 그 대토지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갈수록 많아져 조정의 통화 팽창도 심각해지고 있었다.

가사도는 조정이 곡물을 사들이는 정책의 철폐를 건의하였으며, 나아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토지 소유를 금지하고 초과한 토지는 국가가 매입해 공전(公田)으로 전환시켰다. 이를 ‘공전법’이라 하였다. 권신들은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가사도는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 공전에서 발생한 수익은 군비로 돌렸다. 가사도의 이 공전법은 국가에 이로웠지만 권신들에게는 불리했다.

한편 당시 군대 내에는 거짓으로 예산을 꾸며 착복하는 것이 비일비재했는데, 가사도는 ‘타산법(打算法)’을 제정하여 군대의 모든 경비를 엄격하게 조사 확인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공전법과 타산법의 시행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 권귀(權貴) 세력이 가사도의 파면을 주장했고, 그에게 ‘대간신’이란 오명을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비밀화의 없었다” 역사적 평가 엇갈려

대외적으로 몽골과의 전쟁에서 가사도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론이 있다. 이른바 ‘비밀화의’는 접촉은 있었지만 끝내 체결되지 못했다는 것이 현재 역사계 주류의 시각이고, ‘악주 전투’에 대해서도 당시 세계 최강 몽골군의 침공에 맞서 3개월이나 방어에 성공한 가사도의 군사적 능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이렇듯 가사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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