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기억의 덫

입력 2021-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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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산속에서 세 사람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무당을 통해 셋의 영혼을 불러 진술을 듣는데, 각자가 호소하는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각각의 피의자가 진실이라 주장하는 진술만 남긴 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의 줄거리이다.

“엄마가 저에게 그렇게 공부를 안 할 거면, 차라리 나가서 몸이나 팔라고 했어요. 어떻게 친엄마가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건 지금 엄마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억울하다, 네가 미쳤다’며 펄쩍펄쩍 뛰시는 거예요!”

진료실에서 종종 접하는 풍경이다. 특히, 가족사에서 구성원들 간의 기억이 달라 발생하는 갈등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최근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로 기억에 관한 많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기억은, 적어도 사람의 기억은 일종의 스토리텔링과 이미지로 결합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를 유연하게 구성하기 위하여 알게 모르게 조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기억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내용이 첨가되고 주변의 암시, 개인의 선호도, 성격 특성에 영향을 받아 기억은 그럴듯한 개연성 있는 일화를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세 살 무렵 욕조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었던 기억이 크게 남아 있어 물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있는데, 네 살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필시 부모님들이 그 상황을 계속 일러주셨을 테고, 그 이야기를 듣고 생생한 기억으로 재구성했으리라 본다.

기억이 모여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런 기억이 믿을 수 없다면…. 그래서, 불교에서 ‘무아(無我)’라고 하였는지도…. 과거에 집착하면 ‘우울감’이 오고, 미래에 집착하면 ‘불안감’이 오기 쉽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일 확실한 것은 그것뿐이니까.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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