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는 농업, 먹거리 생산에 가장 큰 영향과 피해를 가져온다. 병충해가 늘고, 재배 적지가 변화되며 수확량이 감소하는 등 먹거리 생산이 불안정해진다. 인간 활동에 의한 지난 100년간의 평균기온 1도 상승은 인류가 농사를 지어 온 이전 1만 년간의 기온 변화에 비해 25배나 빠른 진폭이다. 작물과 생태계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속도로 기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07~2008년 애그플레이션 사태 이후 2010년 여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가뭄은 수확량 감소와 수출 중단, 투기, 국제 곡물가격 폭등을 낳았고, 지중해 연안 지역의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이어져 이른바 자스민혁명이 촉발되고 이 지역의 오랜 정치권력들이 무너졌다. 시리아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전의 혼란에 빠져들고 난민이 늘어나 유럽 각국에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급기야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영국의 브렉시트로 이어진다. 이렇듯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먹거리의 위기는 단순히 작물재배 적응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한편, 인간이 지구상에 이렇게 번성할 수 있는 이유는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소비-폐기에 이르는 농식품체계의 성장과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트에 넘쳐나는 풍요로운 먹거리는 생산과정에서 투입되는 화석연료 기반 자재와 기계, 설비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시간(저장, 가공 등)과 공간(운송, 무역 등) 거리를 화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는 3배 증가했고 전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7배 늘었으며 에너지 사용은 4배, 비료 사용량은 10배 이상 늘어났다.
데이터 공유 플랫폼 ‘데이터 세계’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농식품체계에서 생산, 가공, 유통까지의 분야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6%를 차지한다. 다른 연구에서도 전세계 농식품 분야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은 21~37% 수준이다. 지난해 말 ‘사이언스’에는 ‘지구적 농식품 체계가 1.5도 목표 달성에 복병이 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현 추세가 지속되면 30%에 이르는 농식품 체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2050년에는 두 배로 증가하여 다른 산업의 감축을 상쇄할 것이라 경고하며, 육식과 음식 쓰레기 감축, 곡물 생산-소비 효율화 등 농식품체계의 전환을 촉구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부문별 배출량을 보면(2019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 우리나라의 2017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 7억900만 톤 규모이며, 1990년 대비 142.7% 증가하였다. 분야별로는 에너지 분야가 86.8%, 산업공정이 7.9%, 농업이 2.9%, 폐기물이 2.4%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였다. 전 세계 배출량의 1.7%를 점유하며 9위를 차지하는데, 지속적으로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인구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3.8톤으로 1990년 대비 102.6%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19.8%인 인구 증가율에 비해 5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3%에 못 미치는 농업 부문 배출량은 생산 현장의 직접 배출만 산정한 것으로 농식품체계의 전환 필요성과 실천을 호도하는 수치이다. 농업과 먹거리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수치에는 20%에 머무는 곡물자급률의 현실과 푸드마일로 대표되는 수입, 수급에 따른 배출 외부화를 담고 있지 않다. 그만큼 농식품 전환 정책의 관심도 흐리고 있다.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을 거치며 지금의 풍요로운 먹거리를 생산·소비하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화석에너지에 기대고 있는지를 알아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인식과 행위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지구적 농식품 체계에 맞물려 있는 한국의 농업·먹거리 체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때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관계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고,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문제가 농업·농민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절박한 전환 과제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전환 이행과정에서 우리 농업의 위상과 역할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우리가 농업·농촌의 건강한 지속을 위한 전환의 골든타임을 지켜내야, 우리 손주들이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