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2008년은 말 그대로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심화돼온 미분양은 건설업계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고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 압박은 적지 않은 건설사들을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더 큰 문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데 있다. 경기 불황에 따라 일감 자체가 큰 폭으로 줄어든 데다 주택공급 과잉은 건설업계의 가장 큰 대어인 주택시장마저 '막장'에 이르게 했다.
게다가 2년 전에 증권, 펀드로 이동한 유동자금은 부동산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실정이라 아무리 부동산 규제가 완화된다 해도 가수요로 인한 시장 활황을 기대할 판국도 아니다.
해외건설 수주폭이 크게 확대된 것이 건설업의 웃을 일이지만 이마저도 전세계 금융불안과 고유가 행진도 멈춘만큼 추가 실적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속에서 건설시장의 새로운 희망의 싹은 24조원으로 편성된 내년도 SOC사업이다. 한국판 '뉴딜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초토화된 건설업계의 실낱같은 희망줄인 셈이다.
◆건설사 줄도산. '블랙 2008년'
건설사들에게 2008년은 '블랙 2008년'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건설사들의 줄도산과 잇따라 터지고 있는 흉흉한 부도괴담 때문에 임직원들의 심정도 얼어붙어 있다.
건설사들의 도산 도미노는 지난해 6월 (주)신일부터 시작됐다. 주택전문업체로서 시공능력평가순위 60위권의 이 회사의 부도는 건설사 부도사태의 개막을 알리면서 위기감은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는 올들어 현실화됐다.
올 들어 부도가 난 시공능력평가 순위 500위 이내(2007년 기준) 건설사는 우정건설(120위), 신구건설(169위), 해중건설(182위), 인정건설(324위) 등 일곱 곳에 달한다. 시공능력평가 41위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실적을 쌓아오던 신성건설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C&그룹 계열의 C&우방은 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워크아웃(채권단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12월들어 이 같은 악몽은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기업 신용평가 기관인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잇따라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월드건설, 우림건설 등 주택전문업체들 대부분의 회사채 등급이 투기등급인 B+까지 추락해 있는 상태라 이들 업체들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중견업체만 아니다. 대형건설사들도 잇따라 '부도괴담'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GS건설과 대림산업 등은 부도 위기란 루머까지 나왔으며, 이 가운데 기업 신용등급마저 떨어져 시장에서는 위기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다.
건설업계가 내년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일감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견건설업체는 주택전문업체들의 수주상황은 참혹하다.
대형건설사들은 그나마 토목, 플랜트사업 수주량도 있지만 중견 건설사업체들은 그나마 그림의 떡일 뿐이다. 건설사들이 내년도 '보릿고개' 보는 이유는 이렇듯 복합적이다.
◆건설업계 자금 줄 동맥경화 상태
건설업계의 가장 큰 딜레마는 자금난이다. 당장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은 막힌지가 2년이 다 돼 간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을 제외하면 어느 건설사도 PF대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신규사업을 통한 자금 출연이 불가능해 기존 사업 유지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건설업계의 자금난은 ABCP의 부실화 우려에 따라 증폭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말 현재 금융권의 부동산 PF 규모는 총 97조1000억원으로 유동화 증권은 총 18조20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83.7%가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다.
만기가 최장 1년으로 단기가 특징인 ABCP는 그만큼 투자를 유치하기가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잦은 만기 도래는 건설사들을 더욱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올 12월 한달 동안 만기가 돌아올 ABCP는 무려 1조원. 여기에 내년 3~4월에 돌아올 6000억원 가량의 ABCP가 건설사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설사 대책도 자금 유동성 확보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건설사와 은행권을 포함한 대주단 협약이 바로 그 것이다.
대주단 협약을 통해 회사채 만기도래 등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은행권도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인 만큼 대주단 협약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무턱대고 전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주단에 가입신청한 한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대주단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입하지 않을 경우 당장 내년 봄을 넘기가 어려울 것인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 "내년도 보릿고개는 여전"
건설업계의 위기감은 내년에도 불투명하다. 일단 업계의 전망자체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업계 체감경기지수인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지난달 전월보다 16.5p 하락한 14.6을 기록, 조사를 시작한 2001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한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올초 신년회부터 '생존'이 회사의 방침이 됐다"라며 "내년 한해도 결국 생존이 목표겠지만 전망은 썩 밝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부가 책정한 25조원 가량의 SOC예산은 실낱같은 희망이다. 물론 이 역시도 중견업체들에겐 큰 희망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연명'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아우성이지만 외곽에서는 차분한 입장도 있다. 그간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틈타 건설업이 '흥행'에 성공했던 만큼 거품이 걷힌 지금은 정리되는 것이 오히려 시장 경제상황에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건설업계에도 거품은 있고, 이 거품이 있는 한 건설업계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며, 그때마다 혈세(血稅)가 낭비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건설업계 먼저 거품과의 전쟁을 해야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거품과의 전쟁이야 말로 바로 건설업계가 반드시 이겨할 숙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