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관은 전날 한 전 총리 모해위증 사건을 ‘대검 부장회의’에서 재심의하라며 취임 후 처음이자 역대 네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일각에서는 기소 의견을 염두에 둔 지시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검 부장(검사장) 중 일부가 친정부 성향으로 평가받는 만큼 논의 방향이 기소로 쏠릴 수 있다는 취지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직후부터 검찰 내부망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신헌섭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이날 오전 ‘장관님은 정치인? 국가공무원? 정치적 중립은 저 너머 어디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사법부 최종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이례적으로 발동하니 정치인 입장에서 지휘한 것인지, 국가공무원의 입장에서 지휘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 장관은 조 직무대행의 일선 고검장 참석 방안을 전달받고 조건 없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해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박 장관이 기소가 아닌 재심의를 지시한 것도 혐의 인정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검찰연구관의 의견을 경청해달라는 게 핵심이니 고검장 참여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조 직무대행의 고검장 참여 결정은 표면적으로 수사지휘권을 수용하면서도 형식에 있어서는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와 대검의 갈등 국면에서 고검장들은 검찰 내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당시에도 고검장 6명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 재고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놨다.
고검장들이 대검 부장회의에 참여하면서 모해위증 사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회의에서 기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면 조 직무대행이 회의 결과를 토대로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된다. 조 직무대행은 이미 한 차례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검 부장회의는 이르면 19일 열릴 예정이지만, 검토할 사건 기록이 방대한 만큼 주말까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은 한명숙 수사팀이 2011년 재소자들을 사주해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말했다고 증언하게 시켰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불거졌다. 추 전 장관은 이 사건의 배당 문제를 두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윤 전 총장과 정면충돌한 바 있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8월 한 전 대표로부터 3차례에 걸쳐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9억 원 중 3억 원은 대법관 13명 전원이 유죄로 결론을 냈다. 나머지 6억 원에 대해서도 8(유죄)대 5(무죄)의 의견으로 유죄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