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허용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홍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회에 걸쳐 예비군 훈련과 병역동원훈련 소집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의 거부’라는 비종교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훈련 등을 거부하는 것이 법률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 아래서 성장해 어려서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 군인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도 생겼다.
다만 A 씨는 가족의 설득으로 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에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것을 후회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 관리병에 지원해 군 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예비역에 편입된 후로는 비종교적 신념에 따라 훈련을 모두 거부했다.
1심은 “예비군 훈련 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라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 씨가 수년간 계속되는 조사와 재판, 사회적 비난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과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 등의 불이익이 예비군 훈련에 참석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큰 점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2심도 “유죄로 판단될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도록 중한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점, 대체복무가 도입되면 적극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다는 사실이 소명된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에 의한 경우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 병력동원훈련 거부에 해당한다면 예비군법,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