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창업의 그늘] “내 돈으로 창업하면 바보”

입력 2021-0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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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돈으로 창업하면 바보라는 말을 듣죠.”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창업지원 예산을 편성한 가운데 본업보다 지원금을 노린 창업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기업 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며 일자리 창출 주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창업지원 사업에 역대 최고치인 1조5179억 원을 지원한다. 창업지원 관련 예산은 2018년 7796억 원, 2019년 1조1181억 원, 지난해 1조4517억 원으로 매년 증가세다.

창업이 일자리 창출 대안으로 꼽히면서 정책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신규 창업기업 수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3분기 기준) 창업기업은 115만2727개로 전년 동기 대비 21.9% 늘었다. 특히 개인 창업이 105만6869개로 법인 창업(9만5858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개인사업자는 법인사업자보다 창업 절차가 쉽고 간단하며 설립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창업 시장의 급격한 성장 이면에는 지원금을 노린 무분별한 창업도 상당하다.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사업에 준비 없이 뛰어들거나, 기존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창업 생각도 없이 예비창업 지원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컨설팅해주는 전문 업체도 우후죽순 늘고 있다. 최대 수백만 원을 받고 사업아이템 방향부터 사업계획서 작성, 발표 등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실제 합성수지 제조업체 A사의 부대표는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최근 비대면 분야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을 신청, 최종 선정됐다. 데이터 제공 플랫폼 관련 창업아이템이 통과되면서 사업화 자금으로 최대 1억 원을 지원받게 됐다.

그는 “정부 지원 사업보고서 작성 요령도 생겼다”며 “앞으로도 재미 삼아 더 참가해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출처=중소벤처기업부)
(출처=중소벤처기업부)

스타트업 A사는 지난해 경력직 직원 한 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그런데 이 직원이 하는 일은 본업과는 상관없이 정부 지원 사업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신청하면 되는지를 찾는 것이다. 지원금을 받은 후 사후 보고서 작성도 전담한다.

A사 고위 임원은 “지난해 정부 지원 프로젝트 몇 개를 따냈다”고 자랑했다. 수주한 프로젝트는 정직원이 아닌 외부 프리랜서를 통해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한 창업 컨설턴트는 “창업 지원이 요즘만큼 잘 된 적이 없었는데 이를 활용하지 않는 건 손해고, 요즘엔 ‘내 돈으로 창업하면 바보 된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비대면 지원이 늘면서 관련 문의도 예년보다 많아졌다. 자본금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이 바로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뚜렷한 기업가정신 없이 정부 지원금만 노리는 경우, 지속 가능한 경영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정책이 단순히 많은 기업을 창업시키기 위한 ‘나눠주기식 지원’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이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의 스케일업(규모 확대)과 성과 중심, 투자 연계형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박현준 젠티움파트너스 대표는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을 비롯해 서울창업진흥원, 창업사관학교 등 다양한 지원 사업들이 창업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돈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창업자도 많아졌는데 이런 기업의 경우 결과가 좋진 않았다”고 조언했다.

공성현 액셀러레이터협회 사무국장은 “특히 코로나19 변수로 업종과 시장이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어서 세계 경제와 미래 산업의 변화에 맞춰 잘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필요하다”며 “정책적으로 창업기업이 2차, 3차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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