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불신’이다. 미국의 경우, 2020년 말까지 2000만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1200만 회분이나 풀렸어도 정작 접종은 280만 회에 불과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지난달 27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EU 최강국인 독일은 2일까지 24만 명 가까이가 백신을 맞았다는데, 프랑스에선 1일까지 접종자가 1000명도 안 됐다.
많은 사람이 빨리 백신을 맞아야 ‘집단 면역’도 조기에 가능한데, 접종이 저조하다 보니 당국은 초조하기만 하다. 이런 배경에는 느려 터진 행정 절차도 있지만, 백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의도에서 개발과 심사가 무리하게 빨리 진행된 것 아니냐는 불안과 불신이 만연하다.
화이자는 자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4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95%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홍보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홈페이지에는 92쪽에 걸쳐 화이자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내용이 공개돼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뭐가 95%라는 건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모더나 백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과학적인 정보를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했어도 백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불안과 불신의 근원을 더 파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와 음모론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각종 전염병 백신 개발에 헌신해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일 것이다.
백신 출시가 가시화한 건 작년 10월경부터였는데, 인터넷에서는 그 5개월 전부터 기괴한 소문이 파다했다. 게이츠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에는 마이크로 칩이 숨겨져 있는데, 이 백신을 맞으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역시 이 마이크로 칩을 심기 위한 음모의 일부라는 게 괴담의 요지다.
사실 확인에 나선 영국 BBC는 작년 3월 게이츠의 인터뷰가 괴담의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게이츠는 “누가 회복되고, 검사를 받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누가 백신을 맞았는지 보여주는 데 사용될 디지털 인증서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마이크로 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소똥 백신’이 코로나 퇴치에 잘 듣는다는 허무맹랑한 정보가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공유됐다.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아메다바드미러라는 매체는 소의 젖과 버터, 배설물에서 유래한 약에 대한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소는 힌두교에서 신성시되는 동물로, 일부 힌두교 단체들은 소의 오줌을 마시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이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일축했고, 아메다바드미러 기사에도 소똥을 백신 용도로 실험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괴담들이 세계 최악의 코로나19 감염국에서 퍼졌다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 백신에 대한 불신이 더 퍼지면 집단 면역은커녕 경제 회생도 물 건너가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백신 효능이야 이미 사용을 승인한 나라에서 입증했다 치고, 정부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다. 정부가 백신 관련 계획을 내놓는 족족 부정되고 있다. 현 정부 집권 내내 쌓인 불신이 결정적 순간에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아무리 거금을 들이고,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해 백신을 들여온들, 국민이 거부하면 백신은 소똥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무조건 “믿어라”라며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보다 매 단계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똥보다 더 황당한 백신이 등장할 수도 있다. sue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