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시장조성자제도’ 개편에 대해 시장조성자인 증권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관에게 유리한 공매도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면세 혜택 일몰’, ‘시장조성 대상 졸업제도’ 등 시장조성자의 혜택을 줄이는 것은 가격 조성 활동에 위축을 가져와 개인투자자의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최근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및 불법 공매도 적발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증권사 등과 협의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시장영향 분석 등을 거쳐 세부방안을 확정하고 2021년 상반기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 금융당국 “시장조성자 역할 축소해야” =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및 불법 공매도 적발 강화 방안’은 그동안 기관투자자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약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적발 감시 체계가 부재하다는 개인투자자들의 지적에서 마련됐다. 시장조성자들이 제도를 남용하면서 실제 무차입공매도와 업틱룰(공매도에 따른 직접적인 가격하락 방지를 위하여 직전가격 이하로 공매도 호가제출을 금지하는 제도) 위반 의심사례가 일부 적발되기도 했다.
가령 삼성전자우선주의 매수 호가가 7만원이고, 매도 호가가 7만5000원에 형성돼 있다면 거래가 체결될 수 없다. 7만 원과 7만5000원 사이 촘촘하게 호가창을 매워주는 게 시장조성자의 역할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투자자들은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서 주식 매매가 가능하다.
이 경우 시장조성자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거래가 활발하고 주가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형성된 대형주 거래에서 이익을 보고, 거래량이 적고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소형주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저유동성 종목에서는 일방적으로 체결을 당한다”면서 “이 경우 헷지가 필요한데 헷지수단이 없는 상품도 있어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성자가 매수와 매도 양방향 호가를 제출할 경우 보유하지 않은 주식에 대한 매도호가는 공매도 호가 제출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시장조성 거래가 급격하게 확대될수록 공매도가 증가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필요 이상의 시장조성자 역할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제도 개선의 목적이다.
증권업계는 기관투자자의 불법공매도 차단시스템 도입, 시장조성자 정보공개 확대 등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시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시장조성자 역할을 제한하고,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결국 전체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증권업계 “제도개선, 멀리봐야” = 우선 금융당국은 공매도 비중이 높은 미니코스피200선물·옵션 시장조성자의 주식시장 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기획재정부는 미니코스피200선물 거래세(매도금액의 0.25%)를 면세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니코스피200선물의 유동성이 이미 충분히 확보돼 더 이상 시장조성자가 참여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세금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증권업계는 면세혜택을 없애면 기존 시장조성자들의 이익이 축소돼 시장을 외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거래 침체와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시장조성자가 차익거래를 통해 얻는 수익률은 약 0.2~0.3% 수준인데, 거래세 0.25%를 내고 나면 수익을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조성자로 참여하고 있는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세를 내야하는 상황이라면 세금 비용만큼 호가를 벌려서 내야 한다”면서 “매매에 대한 수익이 세금을 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세금을 내면서까지 수익을 내는 기회를 만들기가 어렵다”면서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은 시장조성자의 역할을 종료했다고 보고, 이에 따라 저유동성 종목도 의무적으로 거래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유동성이 확보되는 경우 ‘시장조성 대상종목 졸업제도’를 통해 시장조성 대상 종목에서 제외하는 것도 같은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성 대상 종목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시장조성자에게 주는 혜택도 없애겠다는 의미다.
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이 풍부한 상품거래라 할지라도 유동성 공급자를 제거하게 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대형종목의 주식선물 호가 간격이 벌어지고, 차이가 커질수록 투자자는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거나 싸게 팔아야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평균 호가잔량도 감소하게 돼 결국은 투자자 손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시장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2013년 우정사업본부 차익거래에 대한 증권거래세 면제 일몰 당시 면제가 일몰된 다음해인 2014년에 연간 거래대금이 전년대비 18% 감소했고, 증권거래세가 6400억 원 감소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자는 “시장조성자제도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대량 거래에도 큰 가격변동 없이 거래가 체결될 수 있고, 시세 조정 등의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차단하는 순기능도 있다”면서 “아기의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