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16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 “벌금, 경영책임자 개인 처벌,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4중 제재를 부과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처벌법안”이라며 “입법 추진을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공정경제 3법, 노조법 개정안 등 기업규제 관련 법안들이 연달아 국회를 통과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1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임시국회 처리 방침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지자 "중대재해법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내 30개 경제단체는 이날 중대재해법 입법 저지를 위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법안과 관련한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기자회견 자리에는 경제단체들을 대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을 비롯한 7개 단체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경제계는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 결과에 대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게 중벌을 부과하는 법”이라며 “관리범위를 벗어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연좌제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 국회에서 기업규제 3법과 노조법 개악이 이뤄진 상태에서 중대재해법까지 도입된다면 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하거나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라며 "이렇게 된다면 일자리가 축소되고, 경제상황도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현재 국내 산업안전정책 기조와 관련,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 정책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처벌ㆍ규제 만능주의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산안법상 사망 재해 발생 시 처벌수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처벌수위가 더 낮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산업국과 비교하면 사고·사망자 감소 효과는 더 낮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업종과 산업현장 특성에 적합하도록 전면 재정비하고, 경영 책임자와 현장 안전책임자 간, 그리고 원청과 하청 간의 역할과 관리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대재해법의 강한 처벌 기준이 중소기업에 치명적일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99%의 사주가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라며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마지막까지 사후처리를 해야 할 대표자가 구속되고, 회사도 문을 닫게 되는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산업 안전 관련 법규가 1222개에 달하고, 규정들이 수시로 바뀌고 새롭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법을 안 지키는 게 아니라 못 지키는 상황"이라며 "현장 특성을 고려한 예방 위주의 산재 해결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또 중대재해법 모델이 된 영국 법인과실치사법도 13년에 걸친 오랜 논의를 거쳐 제정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업안전 분야는 전문행정조직과 인력 수준, 예방정책 수준, 사회적 의식 수준, 기술과 산업수준 등이 전반적으로 영국보다 상당히 뒤쳐져 있음에도, 기업 처벌만 영국 제도를 차용하려는 건 시스템적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형량을 가중하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올해부터 적용된 만큼, 산안법 시행에 따른 평가를 거친 뒤 중대재해법의 필요성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경제계는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은 "지금은 사후 처벌 강화가 아니라 사전 예방정책 강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법 등이 무더기로 통과돼 규제 쓰나미로 크게 상심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받는 충격과 좌절감이 어느 정도일지 정부와 국회가 십분 헤아려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