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창업자들 사이에선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지원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특히 올해엔 인공지능(AI)이나 비대면 스토리를 넣기만 하면 정부 지원금 따 먹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한다. 심지어 컨설팅 업체가 비대면으로 포장하라고 부추긴다. 국민의 세금을 마구 가져다 써도 이걸 빚이라 여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정신이다.
그렇다. 빚은 좋은 것이다. 실제 누구보다 더 많은,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3분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2300%를 넘는다. 웬만한 기업이면 파산했겠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죽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서 대한항공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독과점 논란도 문제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경쟁하는 대상이 외항사인 만큼 국적 항공사로서의 경쟁력은 필요한 상황이라는 논리다.
기원전 49년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쳤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로마 제일의 채무자였다. 그가 에스파냐 총독으로 임명돼 부임지로 떠날 때, 몰려온 빚쟁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출발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겐 크라수스가 있었다. 로마 최고의 부호이자 폼페이우스의 정적이었던 ‘크라수스’. 크라수스는 자신의 채권뿐 아니라 카이사르가 다른 사람에게 진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을 서줬다고 한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두고 “빚의 규모가 작을 때는 채권자가 강자이고 채무자는 약자이지만, 액수가 늘어나면 이 관계가 역전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채무자가 ‘갑’이 되어 돈을 더 빌려주지 않으면 아예 갚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형국이 된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영끌은 좋은 것이며 지속하여야 한다.
최근 만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질 것이 뻔하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허상이다. 따라서 집값이 하락할 때 가계 부실과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영끌은 이런 기대 심리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역설했다.
맞는 말이다. 빚 없이 매달 저축만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어떻게든 빚을 내서 월급 외 소득을 만들어야만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거품 붕괴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알아서 다 받쳐줄 것이다. 증권 시장이 폭락하면 개인의 책임이라며 손놓아 버리겠지만, 집값이 폭락하는 데 가만있을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젠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주택은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재이자 공공재라는 명분이 있으니 정부가 가만있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연말까지 은행 대출받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가 가계 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가서다.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듯 14일 KB국민은행은 연말까지 1억 원을 초과하는 가계 신용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새로 신청한 신용대출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용대출 잔액과 합해 1억 원을 초과하면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또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신용대출 한도도 2억 원으로 일제히 낮췄다.
하지만 아직 창구는 많이 남아 있다. 새마을금고도 있고, 저축은행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금융기관을 찾아가 미리 대출을 받아 놓도록 하자. 대출을 많이 받아 놓은 것도 능력이다. 이제 그 능력을 한껏 부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