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을 풀어낼 동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대통령으로서 혼란을 매듭짓는 ‘결단’이 아닌 원론적 언급으로는 이미 정치공방을 넘어 사법적 사안으로까지 번진 상황을 수습할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열고 “공직자는 소속 부처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위기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진통이 따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개혁과 혁신으로 낡은 것과 과감히 결별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도 피력했다.
추미애 장관에게 힘을 싣고 윤석열 총장의 언행을 부처 이기주의나 반개혁적 행위라고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다소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뿐 아닐 ‘개혁 주체’로 나선 법무부 내부에서까지 반발이 확산된 만큼 문 대통령이 계속 침묵하거나 애매한 입장만 취해서는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 내부 조직의 90%가량이 윤 총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추 장관의 지휘를 받는 법무부 소속 직원들도 윤 총장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명령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법조계뿐 아니라 국회와 청와대까지 추-윤 갈등으로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이 내달 2일로 다가왔지만 ‘윤석열 사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 등 주요 쟁점 법안들이 맞물리며 6년 연속 법정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예산안 처리 이후 개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청와대 역시 입장이 난처해졌다. 예산안 처리 자체가 길어진 데다 여권에서조차 ‘추-윤 동반 사퇴’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표명은 사실상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 자신이 임명하고 법으로 임기를 보장받는 검찰총장이 스스로의 뜻과 무관한 방식으로 거취가 결정 나는 과정에 문 대통령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한다면 정치적 부담을 넘어 위법 논란까지 부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 관해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