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이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행정부 초대 재무장관에 재닛 옐런(74) 전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을 내정했다는 소식에 23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이같이 보도했다.
옐런은 이날 발표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 지명자 등 여성 각료 인사 중 가장 주목을 받았다. 옐런이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231년 미국 재무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되며, 금융시장에서 가장 낯익은 인물이어서 더욱 그랬다.
블룸버그통신은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탄생했다”며 “중앙은행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미국의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최고위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옐런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2014년에는 연준의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으로서 4년 간 연준을 이끄는 등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지닌 능력자다. 어떤 자리를 가든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은 옐런이 월가와 진보·보수 진영을 불문하고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날 바이든이 옐런을 정권 초대 재무장관에 내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미국 증시 S&P500지수는 1% 가까이 뛰었다. 옐런이 연준 의장에 재임할 당시 11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음에도 기술주들은 2배나 올랐었다.
그동안 금융 업계와 보수 진영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같은 좌파 성향 인사가 재무장관에 오를까봐 경계한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대형 은행이나 부유층에 과도하게 우호적인 인사가 지명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게리 콘은 트위터에 “옐런이 이 어려운 시기에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촉진에 필요한 통솔력을 발휘할 것을 확신한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재무장관으로서 옐런은 현재 미국 경제와 사회를 혼란에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세제 개혁, 은행 개혁 등 중책을 담당하게 된다. 여기다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 등 트럼프 정권에서 무너졌던 국제 공조를 회복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도 갖는다. 바이든은 옐런이 그동안 쌓아온 해외 재무당국이나 중앙은행 수장들과의 두터운 인맥을 활용해 국제 공조의 재구축하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4년 간 2조 달러라는 거액의 인프라 투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1930년대 ‘뉴딜 정책’ 이후 최대 규모로, 이에 대한 재원 마련 역시 재무장관의 몫이다.
문제는 정치력이다. 재무장관이란 자리는 경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정치력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자리다. 현재 미국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의회에서 ‘트위스트 정국’이 계속되면 재무장관은 예산 문제 등을 놓고 상하 양원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또 주목되는 건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과의 호흡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중앙은행의 역할이 컸지만 이후 경기가 안정되면서 연준의 역할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현재 연준은 장기적인 제로(0) 금리 정책으로 운신의 폭이 좁다. 재정의 역할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오죽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파월 의장은 재정 확대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며 정부에 재정 지출 확대를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경제학자 출신인 옐런과 금융권 출신인 파월의 의기투합에 대한 의구심이 컸지만, 기우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옐런은 재정정책을 중시하는 케인즈 학파여서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을 우위로 놓고 있는 만큼 전·현직 연준 의장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옐런은 10월 19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이 여전히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안은 이례적으로 재정 지원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