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트럼프의 기막힌 ‘정신승리법’

입력 2020-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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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국제경제부 기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선 후보 첫 TV 토론은 한 편의 촌극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끼어들기와 조롱의 ‘진수’를 보여줬다. 트럼프에게 말려든 진행자는 “네가 더 많이 끼어들었다”며 ‘초딩’ 말싸움을 방불케 했다. 급기야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입 닥쳐”라는 말로 추함의 정점을 찍었다.

평가는 거칠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었다고 혹평했다. 트럼프가 술집에서 깨진 병을 들고 시비를 거는 사람 같았다고 비꼬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 역사상 최악이었고 악몽이었으며 국가적 수치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는 딴 세상에 있었다. 토론 이후 트럼프 캠프 측은 “트럼프가 강한 대통령상을 보여줬다”며 “이겼다”고 판정했다. 여론조사 응답자의 70%가 “짜증났다”고 한 토론에 대해 승리라고 자평할 수 있는 건 웬만한 정신력으론 힘든 일이다.

가만 보면, 트럼프의 ‘정신승리’는 늘 상상 이상이었다. 백미는 ‘셀프 A+ 학점’이었다.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어선 날, 트럼프는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스스로에게 A+를 줬다. 그러면서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 250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이유를 막론하고 확진자와 사망자 세계 1위만으로도 이미 낙제점 아닌가.

트럼프의 기막힌 정신승리는 1921년 중국 작가 루쉰이 발표한 ‘아Q정전’의 아Q를 묘하게 닮았다. 날품팔이꾼 아Q는 동네 건달들에게 변발을 낚아채여 벽에 머리를 찧는 굴욕을 당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그가 얼간이인 줄 다 아는데, 혼자만 합리화를 통해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킨다. 루쉰은 당시 명백한 패배에도 중화사상에 찌든 중국을 아Q에 빗대 신랄하게 풍자했다.

때론 약해져야 강해진다. 실패와 과오를 인정하는 게 약함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그래야 발전이 있다. 강함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인다. 현실을 외면한 아Q는 결국 처형된다. 허황된 자존심의 말로였다. 100년 전 아Q의 모습이 트럼프에 어른거린다. 결말이 밝혀질 대선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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