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드는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이 중국을 견제하는 집단안보협의체다.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이다. 이번 회의에서 폼페이오는 “아시아 전체가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4개국 외교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의 연대 강화에 뜻을 모았다.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 뉴질랜드가 포함되는 7개국의 ‘쿼드 플러스’에 공들인다. 지난 3월부터 이들 나라 외교차관급 협의만 십수차례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의 파열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쿼드 플러스가 중국을 봉쇄하는 안보장벽을 세우는 것이라면, 트럼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은 반중(反中) 경제블록이다. 미국이 불붙인 무역분쟁과 화웨이 제재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공격의 시작이다.
예전의 미중 협력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글로벌 패권을 중국이 위협하는 데 분노하고 있다. 결국 미국 자유주의와 중국 공산당 독재 전체주의의 충돌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대결에 이은 신냉전(新冷戰)이자 ‘대결별’(Great Decoupling)로 가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국과의 관계정상화 이후 유화정책으로 중국 개방을 이끌고 무역특혜를 주었다. 세계 자유시장 질서에서 중국의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발판으로 급격히 경제력을 키운 중국은 오히려 힘의 팽창을 추구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데 이르렀다. 미국이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전쟁구도로 온 것은 ‘투기디데스의 함정’ 논리가 설명한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나 바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편에 설지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문제이지만 국익을 지키기 위한 답은 분명하다. 한미동맹이 갖는 ‘가치동맹’의 성격에서 그러하다. 6·25전쟁 이후 우리 안보의 버팀목으로 출발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동맹, 자유·민주·인권 등의 원칙과 이념을 공유하는 포괄적 가치동맹으로 진화했다. 반면 중국의 모든 분야에 대한 공산당 통제는 인류의 보편 가치와 거리가 멀다. 중국에 실질적 민주체제가 이식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중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동맹을 냉전동맹으로 규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반미(反美)의 구시대적 운동권 시각에 머문 상황인식 능력의 부족을 드러낸다.
쿼드 플러스, 또 EPN에서 정치와 안보, 경제의 경계는 구분되지 않는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질서는 피아(彼我)만 가를 뿐이다. 우리는 안보를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 이 안미경중(安美經中) 구도의 설득력이 없어지고 있다.
이미 ‘안미’도 ‘경중’도 흔들린다. 트럼프는 주한 미군을 빼내가겠다고도 한다. 지난 3년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중단됐다. 중국은 사드보복에서 보듯, 그들 이익과 어긋날 때 주변국을 무자비하게 찍어누르고 길들이려 한다. 정경분리 같은 건 애초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안미경중의 비현실적 허상에 매달린다. 위기를 부르는 착각이다.
우리에게 어떤 카드가 있나. 치명적인 경제 타격,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오겠지만 미국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국과 깊게 얽힌 경제 리스크부터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양다리 걸치기의 ‘전략적 모호성’은 가장 나쁘다. 이 전략이 먹히려면 미국과 중국의 이익계산에 상수(常數)로 작용할 우리만의 임계적(臨界的) 무기, 독립된 선택의 지렛대를 가져야 한다. 북한은 핵을 확보했다. 우리에게 그런 무엇이 있나. 두 강대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틈새에서 치이는 처지가 우려된다. 안보도 경제도 무너지는 건 필연이다. 미국의 국익이니까 미군이 한국을 지킨다는 논리가 언제까지 성립될 수 있을까? 한미동맹의 공유가치, 추구해야 할 국제질서, 미중 결별의 시대 대한민국이 갈 길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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