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찾은 서울 마포구 망원나들목 공영주차장에 생경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연보라색을 칠해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여유롭게 주차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여느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과는 달랐다. 중간에는 아이 손을 잡은 어른, 임산부, 노약자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그러져 있어 특정한 목적으로만 주차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용자에게 전달한다.
마포구가 여성 전용이 아닌 교통약자들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을 만드는 실험을 자치구 최초로 시행한다.
마포구는 이 주차장을 그리면서 'BPA'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넓은 주차장'(Broad Parking Area)과 '유아 동반자'(Baby caring person), '임신부'(Pregnant person), '노약자'(Aged person)의 첫 알파벳을 따왔다. 교통약자들이 이용할 때 조금 더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한 주차장이란 뜻이다. 일반 주차면 대비 너비보다 0.3~0.5m 더 넓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출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개념의 주차장은 등장할 때마다 찬반 논란이 뜨겁다. 가뜩이나 부족한 주차공간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비어있을 때 차를 대는 것에 대한 논박이 오갔다. 경차 전용 주차장이 왜 필요하냐는 논쟁도 적지 않았다.
특히 여성 전용 주차장의 경우 11년 전 서울시가 처음 도입하면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저항을 불러왔다. 여성 전용 주차장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해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남성이 이곳에 주차하더라도 차를 견인하거나 과태료를 물을 수 없고, 주차 관리인과의 갈등만 유발한다는 점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BPA를 보는 시각은 이러한 논쟁과는 다른 양상이다. 시민들이 대체로 BPA 취지에 공감한다. 성별로 사용 기준을 나누지 않은 데다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날 망원나들목 인근에서 만난 김주형(42ㆍ가명) 씨는 "임산부가 옆자리에 타도 운전자가 남성이면 여성 전용 주차장을 이용 못 하게 할 때도 있었다"며 "이런 주차장이 남녀갈등을 유발하지 않고 불만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가족도 더 편하고 안전하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두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최지현(36ㆍ가명) 씨는 “누가 타느냐에 따라 배려하는 게 매우 합리적”이라며 “카시트를 꺼내려고 주차선 밖으로 움직이는 게 위험한 일인데 여유 공간이 생겨서 안전도 지키고 다른 차도 배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나치게 약자를 배려하려는 정책이 되레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반대의 의견도 있다. 김상만(52ㆍ가명) 시민은 “이미 장애인 주차장으로 배려해야 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며 “주차 공간도 부족한데 이런 주차장을 확대하다 보면 일반 시민이 이용할 공간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토로했다.
마포구는 신설 주차장을 중심으로 BPA를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기존 여성 전용 주차장은 그대로 유지한다.
마포구 관계자는 “기존 주차장도 확대할 수 있지만 우선은 신규 주차장 위주로 BPA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민의 반응을 살핀 뒤 확대 범위 등을 고민해보겠다”며 “여성 전용 주차장보다는 BPA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마포구는 마포중앙도서관 추장에 2면을 BPA 구역으로 운영해 왔다. 망원나들목 공영주차장에는 8면이 추가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