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와 사법부 장악력도 높다. 국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이 5분의 3(180석)을 차지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독식했다. 마음만 먹으면 법안 통과는 일도 아니다. 임대차 3법 단독 처리로 이를 입증했다.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하는 헌법 개정을 빼곤 못할 게 없다. 사실상 1당 국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3년간 검찰과 법원의 물갈이를 통해 친여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했다. 민주화 이후 이 정도로 힘센 정권이 있을까 싶다.
레임덕은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야당은 견제할 힘이 없다. 이해찬 전 대표의 20년 집권론, 아니 그 이상을 말한들 놀랄 일도 아니다. 그만큼 힘이 있다. 말 그대로 거칠 게 없다. 여권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힘센 권력의 역설이다. 무엇보다 독주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양보를 통한 협치는 뒷전이다.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이미 가진 게 많은 기득권이다. 보이지 않는 특권의식이 그들을 휘감고 있다.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던 30년 전 그들이 아니다. 국정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율 40% 유지를 위해선 열성 지지층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핵심 지지층 이탈로 힘들었던 노무현 정부의 교훈이다. 선의로 추진한 정책은 디테일이 약해 고전하지만 밀어붙인다. 진영논리에 기댄 힘의 정치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여권이 걷는 길이다.
위기는 두 갈래다. 하나는 진보의 핵심가치인 평등과 공정, 정의라는 원칙이 흔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과 싸우는 정책이다. 공감능력 상실에 따른 불통이 화근이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와야 한다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었다. 조국, 추미애 사태를 거치면서 이 원칙이 훼손됐다. 여권은 시종 ‘법대로’를 외쳤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그만이라는 논리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외쳤던 도덕적 가치와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다. 우리 식구는 우리가 지킨다는 진영논리가 작동한 결과다. 사태의 본질은 애써 외면했다. 애당초 법 위반 여부는 국민 관심사가 아니다. 국민이 분노한 것은 기득권의 보이지 않는 특권적 반칙이다. 국민과 소통이 될 리 만무하다. ‘그들만의 공정과 정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 신뢰는 금이 갔다.
여권의 공감능력 부재는 북한군에 의한 우리 국민 피살사건 대응에서도 드러났다. 반인륜적 참사에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이유를 불문하고’라는 전제가 달린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가 나오기까지 4일이 걸렸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대통령 기본 책무라는 점에서 즉각 유감을 표하고 애도하는 게 옳았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게 순서다. “미안하다는 말을 두 번 한 것은 처음”이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나 “계몽군주 같다”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발언도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정책의 시행착오도 반복되고 있다. 임기 초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목표는 소비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이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함으로써 생산과 투자를 유발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방향은 옳았지만 시뮬레이션조차 생략된 디테일이 문제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상인과 서민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저소득층 일자리가 사라졌다. 저소득층 가구 소득이 줄면서 상하위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부동산 정책도 그렇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23번의 대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거꾸로 움직였다. 서울을 넘어 수도권까지 급등했다. 정권 출범 때 6억17만 원이었던 서울 평균 집값은 10억312만 원으로 뛰었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의 씨가 마르면서 부르는 게 값이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어설픈 규제의 역설이다.
위기는 소리 없이 온다. 불통과 아집, 정책의 실패, 오기의 정치는 민심 이반을 부른다. 박근혜 정권이 그랬다. 여권에서 비슷한 위기 징후가 감지된다. 중도층이 이탈하고 있다. 민심이 떠나면 권력은 모래성이다. 더 늦기 전에 국정 전반을 돌아볼 때다.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이 그 시작이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