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한 자산운용사의 간판 펀드 책임 운용역으로 자리를 옮긴 국민연금 출신 인사는 최근 국민연금 운용역들의 기강해이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대답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신의 직장’으로 통했다. 752조 원에 달하는 기금 운용에 직접 참여하며 국내외 금융시장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세계 3대 연기금에서 일하는 자부심도 메리트였다. 하지만 이러한 메리트는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이 ‘잘해야 본전’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기피 대상이 됐고, 기금본부 조직원들의 자부심은 낮아져 인력난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대마초 흡입’이라는 일부 운용 운용역 일탈 문제가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면서 기금본부 조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쳤다는 게 기금본부 안팎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일을 단순히 일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문제의 근원은 조직원들의 자부심 부재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본사가 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전라북도 전주로 이전하면서 운용역들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가족과 떨어져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두 집 살림, 업무상 비효율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여기저기서 ‘훅’ 치고 들어오는 외압에 기금 운용의 투자 방향성과 자율성이 흔들리는 점도 문제다. 이러한 고충은 사기저하와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 전문 인력 확보와 유지에 대한 고민은 이어졌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다.
고질적 인력난과 이들의 자부심 결여는 30년 안팎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기준 국민연금 수익률은 0.5%였다. 글로벌 증시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주요 국가의 연기금에 비해 수익률이 들쭉날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률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연금 고갈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커지게 된다. 금융권에서는 기금 운용 수익률이 연평균 1%포인트만 떨어져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5년 앞당겨진다고 분석한다. 고령화 시대 국민연금의 인력난과 조직원의 자부심 결여를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