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업계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수출규제가 15일부터 시작됐다. 화웨이의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제조용 반도체 공급을 끊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력 제재다. 화웨이는 세계 스마트폰의 20%, 통신장비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국내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연간 10조 원 이상의 거대 수요처를 잃을 위기다.
13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영국 ARM을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인수합병(M&A) 금액이 400억 달러로 반도체 업계 역대 최대 규모다. ARM은 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칩 설계시장의 90%를 장악한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장치(GPU)의 글로벌 선두다. 세계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의 싹을 잘라버리려 하고 있다. 반도체가 미래의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기술패권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화웨이의 대체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내 업체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규모는 삼성전자 연간 7조 원, SK하이닉스 3조 원 정도다. 수출 중단에 따른 단기 충격이 불가피하다. 다만 화웨이의 공백으로 중국의 2위 그룹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부상하면서 이들의 구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이 이들 기업까지 제재할 가능성이 없지 않고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계 스마트폰과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삼성과 LG전자 등이 화웨이의 점유율 일부를 가져오는 반사이익도 기대된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이 가장 큰 변수다. ARM을 인수한 엔비디아가 모바일AP뿐 아니라, AI 및 자율주행차 등의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공룡으로 떠오를 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 삼성과 SK하이닉스도 미래 주력사업으로 키우는 분야다. 치열한 경쟁과 시장 판도 변화가 예고된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중국은 반도체 기술독립을 더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중국의 추격이 빨라지면서 위협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환기적 위기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기둥 산업이다. 아직은 글로벌 시장의 확실한 우위에 있지만, 반도체마저 제동이 걸리면 한국 경제는 더 추락한다. 생존 경쟁에서 독보적 리더십을 지킬 수 있는 초(超)격차의 유지, 기술혁신 말고 답이 없다. 삼성과 SK하이닉스도 초격차 드라이브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 전략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돕지는 못할망정, 기업이 앞을 향해 뛰어가는 데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