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소프트뱅크가 지난달에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넷플릭스, 테슬라 등 나스닥에 상장한 대형주 관련 콜옵션 40억 달러(약4조800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며 ‘나스닥 고래’의 베일을 벗겼다.
콜옵션은 특정 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사들일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오를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구조다. 콜옵션은 레버리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소프트뱅크의 콜옵션을 통한 투자를 현물 주식으로 환산하면 500억 달러어치를 사들인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소프트뱅크는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통해 비상장 기술 스타트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번 콜옵션 투자는 투자회사로서 소프트뱅크가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소프트뱅크가 시장을 교란한 나스닥 고래였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장에서는 주식 액면분할 계획 발표 후 유난히 크게 뛰었던 테슬라와 애플의 밸류에이션이 과대 평가된 것이었는지를 두고 서둘러 분석에 나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만약에 누군가가 대규모 풋옵션을 행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프트뱅크 같은 큰 기업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주목을 덜 받았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 중앙은행이 시장 하락을 막기 위해 뭐든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 게 잘못이다”, “지금의 시장은 실물 경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떨어질 것이었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아울러 소프트뱅크의 역회전 우려가 확산하면서 기술주에 매도 주문이 폭주, 나스닥지수는 3~4일 연이틀 5%대 급락세를 보였다. 애플과 테슬라 주가는 3일 각각 8%, 9% 폭락했다가 이튿날에는 소폭 오름세를 보였다.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5일 소프트뱅크는 “앞으로도 계속 매수할 방침”이라며 진정에 나섰다. 그러나 한 번 놀란 시장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지난 6월 시점에 아마존 주식 10억 달러, 알파벳 주식 4억7500만 달러, 이외에도 테슬라 등 미국 종목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옵션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비난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소프트뱅크 같은 큰 손이 옵션 거래에 나서면 개인 투자자들까지 옵션 거래에 따라나서 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콜옵션 매수를 밝혀낸 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콜 시장에 고래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취재에 들어간 것이었다.
문제는 소프트뱅크가 아직도 어느 정도의 옵션 잔고를 갖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소프트뱅크 같은 거물에다 개인들까지 투기 세력에 합류하면서 증시 불안정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일부 옵션 거래가 해소된 것을 계기로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상황이 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도박장에 가지 못한 ‘꾼’들이 증시로 몰리면서 주식시장이 도박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주가에 연동한 콜옵션 매수 잔고는 올해 들어 급증해 6월 시점에 이미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블리클리어드바이저리의 피터 북크바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프트뱅크의 콜옵션 매수에 대해 “카지노로의 여행”이라며 “만약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했어야 하는 소프트뱅크가 옵션 거래를 통해 단기 수익을 올리려 했다면 헤지펀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관심은 소프트뱅크가 포지션을 해제했는지 여부라며 그들이 그것을 뒤집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