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이날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25분간 전화통화를 하며 코로나19 추가 경기부양책을 논의했다. 그녀는 통화 직후 성명을 내고 “백악관이 코로나19 위기에서도 미국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맹비난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어 “메도스 비서실장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은 경기부양책 규모를 2조2000억 달러(약 2606조 원)로 기꺼이 축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민주당이 그보다 더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녀는 “미국 국민의 요구를 충족해야 해서 더 작은 규모로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 “양측이 비극적인 교착 상태에 있다”며 “민주당은 공화당이 협상 과정을 진지하게 여기면 다시 논의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공화당에 책임을 넘겼다. 펠로시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두고 “행정부가 움직이기 전까지 회담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며 “백악관이 주요 방안을 제시하기 전까지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이번 전화 통화는 백악관과 민주당이 경기부양책 협상에서 파행을 겪은 뒤 논의를 재개하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날 펠로시 의장이 공개적으로 양측의 이견을 발표하면서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들었다. 펠로시 의장은 메도스 비서실장과 통화하기 전부터 “우리는 (공화당과)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우리가 합의점을 찾기 힘든 이유”라고 우회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전날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 달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고 부정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5월부터 경기부양책을 두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5월 이미 3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은 이에 맞서 지난달 말 1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민주당이 절충안으로 2조4000억 달러를 제시했으나 이조차도 협의가 되지 못했다. 이견이 워낙 커 협상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급여세 유예와 실업수당 연장 등 4건에 대한 행정조치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후 민주당에 “추가 협상이 가능하다”며 협상을 재개하라고 압박했지만, 의회는 오히려 고유 권한인 세제 결정권을 대통령이 독자 행동으로 처리한 것을 두고 법정 투쟁까지 예고했다.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행정명령을 발동했어도 무효”라며 제소까지 불사하겠단 뜻을 내비쳤다.
다만 경기부양책의 필요성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도 협상 재개를 원하는 목소리가 큰 데다 셧다운 우려까지 있어 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란 낙관론도 있다. CNN방송은 “펠로시 의장이 일선 민주당원들로부터 협상 재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CNBC방송도 “연말까지 예산안 합의에 실패하면 미국 연방정부는 강제 무급휴가에 돌입하는 ‘셧다운’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의회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을 비롯한 예산안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