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통상임금 갈등…근본 해결책은 '신의칙 구체화ㆍ임금구조 개편'

입력 2020-08-23 11:00 수정 2020-08-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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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소송 마무리됐지만, 산업계에 유사한 소송 여전…'경영상 중대한 어려움' 자세히 규정 필요

▲기아차 노조원들이 20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기아차 노조원들이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기아차 노조원들이 20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기아차 노조원들이 정기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법원이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며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이 일단락났지만,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많은 기업이 비슷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기 위해 사건의 쟁점이 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복잡한 임금구조를 손보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두산모트롤,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등이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패소할 경우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최대 수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한 기업의 관계자는 “소송을 진행 중인 회사마다 세부적인 상황이 다르지만, 기아차 판결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기아차만큼 사업 규모와 재정 여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 입장에서 패소 시 지급해야 할 비용은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기업이 2013년부터 7년 넘게 소송을 이어오고 있는 금호타이어다. 이 회사 노조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을 다시 지급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2017년 내려진 2심에서는 패소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 판단이 다시 뒤집혀 노조가 승소하면 사 측은 2000억 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처지다. 올해 상반기 539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금호타이어에 적지 않은 비용이다.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이처럼 통상임금 소송 결과가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기아차 판결을 계기로 비슷한 소송전이 산업계 전반에 번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이 되는 ‘신의칙’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을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에 근거한 원칙으로, 계약관계에서 성실하게 상대방에게 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일률성을 갖춘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예상되면 근로자가 신의칙에 따라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회사에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을 근로자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라는 조건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회사마다, 판결마다 결론이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영계는 향후 유사한 소송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을 판단할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단기적인 재무상황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글로벌 경쟁 심화 등 외부적인 요인까지도 고려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산업계의 혼란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이 입법 미비에 있는 만큼 조속히 신의칙 적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소모적인 논쟁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주요 기업 통상임금 소송 현황  (이투데이 DB)
▲주요 기업 통상임금 소송 현황 (이투데이 DB)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임금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한국의 임금구조는 낮은 기본급에 각종 수당과 성과급을 더하는 복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과거 급속한 산업화 시기, 임금을 올릴 때 기본급은 유지하면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수당이나 상여금을 추가하던 관행이 굳어진 결과다.

통상임금은 시간 외 수당과 퇴직금의 산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수당과 성과급 중 무엇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따라 실제 임금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복잡한 임금 구조가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도 상여와 식대 등 어디까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이 때문에 임금구조를 단순화하고 성과 중심의 체계를 도입해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모적인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현행법의 개정과 노사간 협상이 필수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복잡한 임금구조를 개선하고,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통상임금 관련 분쟁을 줄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이는 입법은 물론이고 경영 현장에서 노사가 함께 풀어나가야 이룰 수 있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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