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한국은행 교수(전 금융결제국장)는 10일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금융위의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 계획은 설익은 아이디어와 난해한 관념들로 가득하다”며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은행법 등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대표 사례로 지급과 결제의 개념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차 교수는 “지급-결제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해서 많은 법률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금융위가 담당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이 그 예”라고 언급했다. 또한 “지급은 채무 당사자가 하는 일이고, 결제는 채권ㆍ채무자의 거래은행이 하는 일”이라며 “결제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지급과 결제 사이에 약간의 신용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금융기관에겐 결제 리스크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위가 구상 중인 정비 방안에 따르면 개편 후 종합지급결제업이라는 이름 하에 대금결제업과 결제대행업 등이 포함돼 있다.
차 교수는 “선불카드와 후불카드 등 플라스틱 카드를 통틀어 지급수단이라 한다. 그런데 금융위는 플라스틱 카드와 관련된 사업에 ‘결제’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며 “이들의 사업을 결제대행업이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전자금융거래법이 이처럼 어수선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거기에서 출발하는 디지털금융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의 자본시장법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한마디로 말해 금융위는 지급-결제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그런 상태에서 발표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은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안을 던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방안에 따르면 금융위는 장차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인가할 예정”이라며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기관은 이미 넘치게 존재한다. 바로 은행”이라고 전했다.
그는 현 은행들이 고객의 예금과 지급준비금을 통해 계좌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금융위가 구상하는 사업이 이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종합지급결제사업자의 예로 영국과 싱가포르 등 기관을 소개했지만, 이 역시 지급상 편의를 제공하는 기관일뿐 결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게 차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지급결제제도 발전을 위해선 한은과의 관계를 잘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 총재가 사원총회 의장으로 있는 곳이자, 향후 오픈뱅킹 핵심이 될 금융결제원을 금융위가 감독하겠다는 입장 역시 ‘염치 없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금융결제원은 1986년 한은 주도로 설립된 기관으로, 한은이 현재 매년 금융결제원 운영경비의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
그는 “금융결제원은 국내 산업분류로는 금융업자가 아닌 사업지원사업자에 해당한다”며 “만약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기관이 필요하다면 이는 금융위가 아닌 법무부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그는 “금융위는 전자금융거래법 등을 다루기 앞서 지급-결제에 관한 기본 원리와 개념부터 차근차근 점검해야 한다”며 “우선 한은과의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 나아가 은행법 등 다른 법률에서의 개념들과도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